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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치를 새로운 일상으로 재해석하는 타이베이의 매장 5곳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새로움은 기존의 것을 더하거나, 빼거나, 변형해 만들어집니다. 결국 그 동안 쌓아온 과거가 새로움의 밑바탕인 셈입니다. 타이베이는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자산으로 재해석하는 데에 탁월한 도시입니다. 새로울 것 없는 오래된 소재들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과거의 가치가 현대의 일상에서도 생명력을 갖는 매장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그 중에서도 차, 두유, 전통 호빵, 종이, 오래된 건물을 활용해 익숙한 새로움을 만든 매장 5곳을 소개합니다.

 

Quick View

 

• #1. 미각보다 시각으로 먼저 맛보는 찻집 – 징성위

• #2. 나이를 잊은 두유 가게의 비결 – 소이프레소

• #3. 재래시장을 살린 호빵집 – 호싱 1947

• #4. 종이의 한계를 넓히는 종이 가게 – 펜코 카탈리시스 체임버

• #5. 호텔 로비가 동네 사랑방이 된 이유 – 오리진 스페이스

 

본 콘텐츠는 읽는 데 총 7분 정도 소요됩니다.


1. 미각보다 시각으로 먼저 맛보는 찻집 – 징성위

직관적인 분류 기준과 디자인으로 고객의 선택을 돕는 테이크 아웃 전문 차 브랜드입니다. 징성위는 판매하는 20여 가지 차를 상쾌한 향, 훈연 향, 꽃향과 과일향, 깊은 향 등 차에서 나는 4가지 향으로 분류합니다. 우롱차, 홍차 등 차의 종류로 차를 구분하는 보통의 찻집과 대조적입니다. 덕분에 차를 잘 모르는 고객도 쉽게 원하는 향의 차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향에 청색, 녹색, 홍색, 갈색을 부여하고, 메뉴판에 해당하는 색을 적용해 차의 향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바쁜 사람들을 위한 테이크 아웃 전문점인 만큼, 고객이 차를 고를 때 망설이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고객의 불필요한 시간은 줄이지만, 차를 내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확보합니다. 주문 즉시 차를 우려내기 시작하는데,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뜨거운 물로 찻주전자를 데우고, 저울로 찻잎의 무게를 재는 등 차의 향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빼놓지 않습니다. 특히 냉차는 얼음으로 온차를 식혀서 만드는데, 이 때 얼음이 녹는 정도와 차의 농도를 정확히 계산하여 최상의 맛을 구현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레스토랑의 오픈 키친처럼 고객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빈틈없이 능숙하게 차를 우리는 과정을 구경하는 즐거움은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 티백과 잎차의 패키지도 눈여겨 보세요. 제품 패키지 디자인에도 차의 향을 나타내는 색상을 활용했습니다. ⓒ京盛宇
<<< 냉차를 담아주는 투명한 플라스틱 병은 징성위의 시그니처입니다. 일회용 컵과 달리, 휴대와 보관이 용이한 장점이 있습니다. ⓒ京盛宇

 

2. 나이를 잊은 두유 가게의 비결 – 소이프레소

대만의 전통적 먹거리 중 하나인 두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매장입니다. 소이프레소는 두유에 아몬드, 코코아, 딸기 등 현대적인 맛을 가미하거나 오이 두유같이 실험적인 맛을 시도해 젊은이들의 입맛과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팬층을 보유한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노리타케(Noritake)가 그린 두유 마시는 소년 캐릭터를 매장 전면에 내세워 젊은층 뿐만 아니라 외국인 고객들과도 접점을 늘립니다. 심플한 모노크롬 캐릭터가 미니멀한 매장 디자인과 어우러져 현대적인 감성을 더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소이프레소는 1978년에 문을 열어 현재 2대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이프레소의 명성이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현대적인 브랜딩은 물론이고 양질의 재료와 남다른 기술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이프레소는 두유에 방부제, 소포제 등을 일절 첨가하지 않고 캐나다에서 수입한 유전자 비변형 대두만을 사용합니다. 게다가 커피콩을 고압력으로 추출해 에스프레소를 만들 듯, 대두의 아로마를 130도에서 높은 압력 스팀으로 추출해 무게감있고 진한 두유를 만듭니다. 덕분에 식감은 끈적이지 않으면서도 단백질 함량이 높고, 맛 좋은 두유를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 투명한 통유리 덕분에 매장 밖에서도 두유를 만드는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물론, 고객들의 신뢰감을 더합니다.
<<< 소이프레소는 주력 제품인 두유뿐만 아니라 또우화(豆花), 두부, 두유 아이스크림, 두유 요구르트 등 콩으로 만든 다른 제품도 함께 판매합니다.

 

3. 재래시장을 살린 호빵집 – 호싱 1947

서양식 디저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중국식 찐빵과 과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브랜드입니다. 호싱 1947은 전통 디저트의 제조 방식, 식감, 품질은 그대로 유지합니다. 여전히 전통적인 나무 틀로 과자의 모형을 만들고, 찜기를 이용해 담백하고 쫄깃한 맛을 구현합니다. 대신 크기, 디자인, 재료를 변주했습니다. 가볍게 먹기 좋게 기존 디저트의 크기를 약 60% 정도로 줄여 한입 크기로 만들고, 제품과 패키지에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제철 재료를 사용해 현대적인 맛을 시도하는 데에도 적극적입니다. 감각적으로 재해석된 전통은 기품과 함께 손님들에게 오래된 새로움으로 다가갑니다.

 

 

호싱 1947의 전신은 1947년 문을 연 ‘상하이호싱까오투안띠엔(上海合興糕糰店)’입니다. 창업자의 손녀인 렌지아룬(任佳倫)이 2016년에 가업을 이어 받으며 상호명을 호싱 1947로 바꾸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렌지아룬은 늘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영국의 활기찬 전통 시장을 좋아했습니다. 반면 대만의 전통 시장은 나이 든 사람들만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렌지아룬은 집안의 가업으로 전통 시장의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과감히 재래 시장에 매장을 엽니다. 호싱 1947의 디저트를 맛보러 온 젊은 손님들이 재래 시장의 매력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 호싱 1947의 두 번째 매장은 ‘바시바팅 바이 호싱 1947(Bashihbating by Hoshing 1947)’이라는 이름으로 신푸(新富) 시장에 위치해 있습니다.

<<< 바시바팅 바이 호싱 1947은 옛날 재래 시장 사무실 건물을 그대로 사용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4. 종이의 한계를 넓히는 종이 가게 – 펜코 카탈리시스 체임버

무엇인가를 쓰기 위한 종이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소재로 재해석한 종이 편집숍입니다. 펜코 카탈리시스 체임버는 목재 펄프로 만든 보통의 종이와 달리, 파인애플 섬유, 쌀겨, 플라스틱 등 종이 재료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재료들로 만든 종이를 예술 작품처럼 전시하고 판매합니다. 또한 디자이너, 가구제작자, 건축가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함께 종이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종이로 만든 옷, 플라스틱 종이로 만든 설치 미술 등 형태도, 규모도 다양합니다. 종이의 한계를 무너뜨리자,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아이디어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됩니다.

 

 

‘수호 종이 박물관(Suho Memorial Paper Museum)’은 대만의 제지 회사 ‘장춘미엔지(長春棉紙)’가 1995년에 문을 연 대만 유일의 종이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은 수십 년간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작업에 필요한 특수 제지들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종이의 가능성을 펼치기 위해 2017년에 문을 연 곳이 바로 펜코 카탈리시스 체임버입니다. ‘촉매제’를 뜻하는 카탈리시스는 종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고, ‘방’을 뜻하는 체임버는 빈 공간이 가진 확장성을 상징합니다. 이 두 단어를 합친 펜코 카탈리시스 체임버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 매장 한 켠의 ‘모스 체임버(Moss chamber)’에서 이끼를 구경해 보세요. 예술 작품이자 숲의 축소판인 이끼는 바쁜 일상에 여유를 더합니다.
<<< 함께 운영하는 전시 공간인 ‘히든 체임버(Hidden chamber)’에서는 향기나는 전시 등과 같은 신선한 컨셉의 전시를 선보입니다.

5. 호텔 로비가 동네 사랑방이 된 이유 – 오리진 스페이스

호텔의 로비는 숙박객의 편의를 위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외부인을 반기지 않습니다. 어떤 호텔들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로비를 1층이 아닌 상층부에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리진 스페이스의 로비에는 숙박객보다 지역 주민이 더 많습니다. 로비에 편집숍과 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자처합니다. 게다가 숙박객들에게는 하루 1잔의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 카페에 머무를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덕분에 숙박객들은 현지인들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가고, 단골들과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체크인은 불편할지 몰라도, 여행의 경험만큼은 풍부해 집니다.

 

 

오리진 스페이스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호텔입니다. 건물의 구조, 테라스 바닥 등은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2, 3층에 위치한 객실들도 옛날 구조를 그대로 두어 크기도 제각각이고 층고도 높습니다. 공간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공간감은 라이프스타일의 첨단에 가깝습니다. 객실에는 일본의 가리모쿠60, 덴마크의 루이스 폴센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힘든 유명 브랜드의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턴테이블과 바이닐 레코드까지 준비되어 있어 숙박 이상의 경험이 가능합니다. 객실이 그 자체로 비일상적인 여행지가 되는 것입니다.

 

<<< 1층 로비에 준비되어 있는 바이닐 레코드를 객실의 턴테이블에서 재생해 보세요. 높은 층고 덕분에 음악이 울려퍼지는 소리가 비현실적입니다.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여행을 여행답게 만듭니다.”

여행의 묘미를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계획한 일정을 숙제하듯 소화할 때가 아니라, 뜻밖의 상황을 느닷없이 마주칠 때입니다. 예정에 없었던 대화, 있는 지도 몰랐던 공간,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 경험하기 어려웠던 현상, 기대하지 않았던 디테일 등이 여행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세우는 건 중요하지만, 우연이 끼어들 여지를 남겨둘 필요도 있습니다. <생각이 기다리는 여행>은 여행에서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선물해 준 생각지도 못한 생각들에 대한 기록이자, 계획할 수 없었기에 더 소중한 여행의 조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