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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갈 수 있는 편집숍 – 플레이 디자인 호텔

가구 편집숍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상식 밖의 이야기라 상상을 해야만 떠올릴 수 있는 이런 공간이 대만의 타이베이에 있습니다. 대만 디자인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플레이 디자인 호텔(Play design hotel)’ 이야기입니다. 100가지 이상의 대만 디자인 제품들로 채워져 있는 이 호텔은 객실을 쇼룸으로 활용하며 호텔이면서 동시에 가구 편집숍이 됩니다. 눈으로 구경하는 전시장이 아닌 몸으로 경험하는 호텔이기에 객실 곳곳에서 인상 깊은 인터랙션 디자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호텔과 편집숍의 경계를 허물고 호텔의 쓸모를 넓힌 플레이 디자인 호텔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고도 제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일시적이라도 제품을 소유하게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그 제품을 소유하기 이전에 평가했던 가치보다 소유한 이후 시점에 그 제품에 대한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행동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실험한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넛지》의 저자이자 노벨 경제학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교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 교수는 머그컵을 가지고 실험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2가지 상황에서 머그컵의 가격을 결정하면 됩니다. 첫째로 누군가가 특정 머그컵을 판매할 때 그 머그컵을 얼마에 살지를 정하고, 둘째로 동일한 머그컵을 갖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 머그컵을 산다고 하면 얼마에 팔지를 정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동일한 제품이니 두 상황에서의 가격이 같아야 하지만, 참가자들은 머그컵을 소유하고 있을 때의 가격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대비 2배 이상으로 매겼습니다.

 

리처드 탈러 교수의 실험에서만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이자 행동경제학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의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옵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아 구하기 어려운 배구 결정전 티켓을 일부의 학생들에게 추첨하여 나눠준 후, 수강생들에게 입장권에 대한 가격을 매기게 했습니다. 티켓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면 평균적으로 10만원에 사겠다고 대답한 반면 티켓을 받은 학생들은 입장권을 판다면 평균적으로 24만원 정도에 팔겠다고 했습니다.

 

두 실험에서 확인한 결과를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고 부릅니다. 소유효과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은 동일한 제품이어도 소유하고 있을 때 그 제품에 대한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한다면 인지된 제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구매 전환율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료 체험 후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은 효과적입니다.

 

무료 체험 기간을 제공하는 목적은 잠재 고객들이 제품의 가치를 경험하며 구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잠재 고객들은 무료 체험을 하며 제품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소유 효과가 작동하는 덕분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무료 체험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소유를 하며, 그 제품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대비 제품의 가치를 높게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료 체험의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판매자 입장에서 잠재 고객들에게 무료 체험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을까요? 고객이 은연 중에 무료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인 호텔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호텔에서는 투숙객들이 호텔에 머무는 기간 동안 방 안의 제품들을 체험하며 일시적으로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이베이의 ‘플레이 디자인 호텔(Play Design Hotel)’은 호텔의 이러한 특징을 영리하게 활용했습니다. 투숙객들이 의도치 않게 무료 체험을 하는 공간인 호텔 방에 의도를 담아 호텔을 새롭게 정의한 것입니다.

 

#1. 스몰 픽처 – 체험의 지평을 넓히는 쇼룸

 

미리 써보기 어렵지만, 미리 써봐야만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제품들이 있습니다. 침대나 조명 등이 그렇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사용성이 달라집니다. 침대는 잠깐 누워본다고 성능이 좋은지 알 수 없고, 조명은 어두운 곳에서 켜 봐야 조도나 분위기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구매가 확실한 게 아니라면 어떤 가구점도 한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손님이 마냥 달갑지 않고, 조명 하나 테스트한다고 전체 매장을 소등해 주기도 어렵습니다. 손님도 눈칫살에 불편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치약이나 샴푸처럼 매장에서 제대로 테스트해보기 어려운 제품들도 있습니다. 매장에서 이를 닦고 머리를 감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기껏해야 향을 맡아보고 결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플레이 디자인 호텔에서는 제품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루의 때를 미처 씻어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할 때 머리맡 따스한 조명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위생용품, 음료 등 어메니티도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어엿한 디자인 제품으로 경험의 대상입니다. 체험해볼 수 있는 제품의 종류도 종류지만 일단 갯수가 압도적입니다. 총 5개 객실을 가진 호텔이지만, 경험해 볼 수 있는 디자인 제품들이 100여 가지에 달합니다. 5개 객실별로 테마를 모두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차를 컨셉으로 한 ‘플레이 티 룸(Play Tea Room)’, 대만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대만에서 제조까지 마친 메이드 인 타이완(Made In Taiwan) 공예 제품으로 채운 ‘MIT3.0 룸’, 만든 이의 철학이 돋보이는 수제품으로만 구성한 ‘메이커 룸(Maker Room)’,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실험실 컨셉으로 꾸민 ‘퓨처 랩(Future Lab)’, 일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나호 오가와의 큐레이션으로 구성한 ‘나호 셀렉션 룸(Naho Selections Room)’ 등 테마에 따라 다른 제품을 선보입니다. 이에 더해 ‘게스트 셀렉션 룸(Guest Selections Room)’을 선택하면 기존 나호 셀렉션 룸에서 손님이 직접 테이블, 의자, 조명, 소품 등 10가지 가구를 골라 바꿀 수 있습니다. 각 카테고리별로 적게는 8개, 많게는 12개 옵션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10가지 카테고리에 8개 옵션만 있다고 가정해도, 게스트 셀렉션 룸에서만 10억개 이상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같은 객실에 묵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  순서대로 플레이 티 룸, MIT3.0 룸, 메이커 룸, 퓨처 랩, 나호 셀렉션 룸의 모습입니다. ⓒPlay Design Hotel

 

<<<  게스트 셀렉션 룸은 웹사이트를 통해 객실을 예약하는 단계에서부터 객실에 배치할 10가지 가구를 고를 수 있습니다. 카테고리별 옵션은 비정기적으로 바뀝니다. ⓒPlay Design Hotel

 

<<<  게스트 셀렉션 룸은 투숙객이 고른 가구들을 미니어처로 제작해 객실 안에 비치해 둡니다.

 

단순히 제품만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 룸의 테마와 연계된 참여형 액티비티도 있습니다. 먼저 플레이 티 룸에서는 객실에 비치된 여러 가지 차를 시음하고, 다음 투숙객이 참고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남길 수 있습니다. MIT3.0 룸에는 제품 사진이 있는 엽서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엽서에 글을 남겨 그 제품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전달할 수도 있고, 친구나 지인에게 엽서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메이커스 룸에는 호텔 주변 공방들의 위치가 표기된 지도를 두어 직접 공방을 방문하여 대만의 공예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퓨처 랩에서는 객실에서 아방가르드한 실험을 진행하며, 투숙객들이 그 실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나호 셀렉션 룸에서는 객실 내 5가지 스팟을 찍어 SNS에 업로드하면 나호가 저술한 일러스트 가이드북 ‘더 디스커버리 오브 타이베이(The discovery of Taipei)’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게스트 셀렉션 룸은 최근에 투숙한 고객의 직업, 출신 국가, 선택한 가구 옵션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그 객실에 묵을 고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  티룸에서는 비치되어 있는 차를 마음껏 시음하고, 준비된 피드백용 종이에 평가를 남길 수 있습니다. 이전 투숙객들이 남긴 평가표를 참고하면서 차를 마시는 것은 특별한 경험입니다.

 

 

<<< MIT3.0 룸에 비치된 엽서입니다. 플레이 디자인 호텔에는 물론, 그 제품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나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엽서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  퓨처랩에서는 흥미로운 실험들이 진행 중입니다. 투숙객들은 실험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이전 투숙객들이 참여한 결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2. 미들 픽처 – 디자인의 무대를 넓히는 디자인 인큐베이션 센터

 

이 정도의 복합 체험 공간을 구성했으니 디자이너에게 가구를 협찬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예상과 달리 플레이 디자인 호텔은 객실 내 비치된 제품의 약 80~90%를 사입합니다. 협찬 받는 경우도 마케팅의 일환으로 무료 샘플을 제공한 몇몇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호텔에서 특별 전시를 한다든지, 제품 사진 촬영을 위해 장소를 대여해준다든지 등 정당한 대가에 의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무료 협찬 비율이 매우 낮으니 제품 큐레이션에 실리보다는 안목이 우선하고, 제품 조달 과정에서는 디자이너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제품 판매에 따른 커미션 정책도 디자이너 친화적입니다.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매장이 있다면, 중계에 따른 커미션없이 구매를 원하는 고객과 디자이너를 직접 연결해 줍니다.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매장이 없거나 인기가 많은 제품은 사입이나 위탁 판매 계약을 통해 제품을 판매합니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와 아직 커넥션이 없는데 고객이 구매 대행을 원하는 경우, 10~30% 정도의 커미션을 받고 고객과 그 브랜드를 연결해 줍니다. 만약 플레이 디자인 호텔이 사입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15~25% 정도의 수수료를 ‘고객’에게 요청하고, 고객이 동의할 경우 사입을 진행합니다. 고객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원하는 디자인 제품을 구할 수 있어 이득이고, 디자이너는 플레이 디자인 호텔과의 첫 거래에서만 커미션을 주면, 이후에는 커미션 없이 플레이 디자인 호텔을 통해 판매할 수 있어 이득입니다.

 

 

<<< 플레이 디자인 호텔의 복도에는 작은 셀렉숍이 마련되어 있어, 오며 가며 디자인 제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제품들은 바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공실률이 10% 남짓한 인기 호텔이라 제품 판매를 통해 부가 수익을 기대해 볼 만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운영 철학을 유지하는 이유는 플레이 디자인 호텔의 출발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시 디자이너였던 팅한 첸(Ting-Han Chen)은 동료 대만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작업을 알리기 위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상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스포츠에서 원정 경기가 불리하듯, 원정 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홈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에서도 불리합니다. 아무리 보편적인 디자인이어도, 디자인의 맥락을 제공한 국가적, 문화적 맥락을 배제하고 낯선 타국에서 그 매력을 뽐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구는 생활하는 공간에서 연출되어야 그 진가가 발휘되는데, 전시를 위한 전시장에서는 빛을 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팅한 천은 대만의 디자인을 대만 현지에서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플레이 디자인 호텔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호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여러 제품을 종합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늘 자신의 제품을 선보일 공간이나 무대가 절실한 디자이너들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 쇼룸을 갖추기에는 임대료, 인건비 등의 비용이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신인 디자이너들의 경우 자신의 작품만으로 공간을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쇼룸은 고객들의 입장에서 실물을 직접 보는 것 말고는 제대로 된 제품 경험을 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플레이 디자인 호텔은 기꺼이 디자이너들의 전시 및 판매 공간이 되어 주는 것은 물론, 맥락을 고려한 제품 배치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적절한 사용 경험을 제공합니다.

 

 

 

 

 

<<<  사용자와의 인터렉션으로 점등과 소등이 가능한 조명들은 독특한 사용 경험을 제공합니다.

 

하드웨어만 바뀌면 반쪽 짜리입니다. 목적에 걸맞게 서비스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플레이 디자인 호텔은 도슨트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체크인을 하면 호텔 매니저가 투숙객이 예약한 룸과 이 호텔의 컨셉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제품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도 디자이너와 브랜드 스토리를 곁들여 풍부하게 제공합니다. 웹사이트에는 객실별, 제품별 상세 정보를 기재하고, 영어로도 병기해 외국인 투숙객들의 이해도도 높입니다. 그리고 객실 안에는 곳곳에 QR 코드 판넬이 비치되어 있는데, 이 QR 코드는 객실과 각 제품에 대한 설명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게다가 예약이 없거나 아직 투숙객이 체크인하지 않은 객실이 있다면, 예약하지 않은 객실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호텔에 들인 디자인 제품들은 사각지대없이 사람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갖게 됩니다. 플레이 디자인 호텔은 이름처럼 디자인을 선보이고, 디자인을 즐기는 공간입니다.

 

 

<<< 객실 내 비치된 QR 코드입니다. QR 코드 리더기로 해당 QR 코드를 읽으면, 제품이나 디자이너에 대한 상세 설명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3. 빅 픽처 – 대만을 경험하는 폭을 넓히는 플랫폼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의 준말인 ‘호캉스’가 유행입니다. 호텔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왜 호캉스라는 말이 생겨나고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호텔에는 일상의 근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이 설득력을 가집니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와 근심이 있어, 일상을 잠시 잊기 위해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호텔로 떠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보통의 호텔은 깨끗하고 포근한 침구류, 고급 브랜드의 어메니티, 세련된 가구 등으로 비일상적인 일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플레이 디자인 호텔은 오히려 호텔 공간을 활용해 투숙객들과 호텔 밖 타이베이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투숙객이 호텔뿐만 아니라 호텔이 위치한 타이베이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플레이 디자인 호텔은 투숙객이 호텔 밖의 시간, 공간, 사람으로 체험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 일환으로 리셉션과 각 객실에는 자체 제작한 가이드북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호텔 반경 약 3km 내외의 지역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호텔에 비치된 가이드북이 타이베이 시 전체의 관광 명소들을 소개하는 것과 차별화됩니다. 규모가 작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역의 보물같은 명소들을 현지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선별합니다. 식사, 카페 등 일반적인 카테고리 외에도 특별히 ‘디자인 쇼핑’을 추가했습니다. 소개하는 장소 모두 천천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호텔 안에서 대만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시작될 수는 있지만, 체험하기에는 어려운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 시작된 관심이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호텔 주변의 디자인 커뮤니티로 경험의 폭을 확장합니다.

 

그런 면에서 플레이 디자인 호텔의 위치도 의미 있습니다. 타이베이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모두 볼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호텔의 동쪽은 타이베이의 옛 모습과 야시장 등 서민문화를 진하게 체험할 수 있는 다다오청 지역입니다. 호텔의 서쪽은 서울의 을지로처럼 작은 골목에 감각적인 카페, 옷가게 등과 오랫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정비소, 철물점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중산 지역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호텔 주변만 돌아봐도 대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플레이 디자인 호텔 자체도 ‘호타이 호텔(Ho-Tai Hotel)’이라는 옛날 호텔의 자리를 리노베이션해 만든 호텔로, 위화감 없이 지역 사회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 플레이 디자인 호텔은 상가 건물의 5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대만 디자인의 맥락을 전달하기 위해 호타이 호텔의 모습 중 시대를 대변하는 요소들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러한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이벤트와 협업을 통해 지역 사회에 깊숙이 관여합니다. 예를 들면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대만 문구 투어’를 진행하고,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지도를 제작해 줍니다. 그리고 근처 매장들에 조명, 가구, 그릇 등을 컨설팅하고 대만 디자이너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또한 대만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대만식 잼이나 피클 등을 셀렉숍에 들여와 각 제품의 만드는 과정과 철학 등을 소개하며 대만의 식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모두 대만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가지각색의 방법들입니다. 이 외에도 주목할 만한 디자인 관련 이벤트가 있으면 소개하고, 무료 티켓 이벤트도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객실이 있는 층의 윗층에 살롱 공간을 만드는 중입니다. 카페를 입점시키고, 자체적인 이벤트나 워크샵을 개최하여 사람들이 대만 디자인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교류하는 공간이 될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문화센터입니다. 호텔이라는 형식, 디자인이라는 매개가 있지만, 플레이 디자인 호텔의 지향점은 결국 대만문화의 발신지이자 플랫폼입니다.

 

<<< 객실층 윗층에 위치한 살롱 공간으로 아직 오픈 준비 중입니다.

 

엔드 픽처 – 호텔을 넘어 일상으로

 

대만이 한 때 세계의 공장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0~1980년대만 해도 대만제 공산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가의 생활 용품부터 고가의 전자 제품까지 전 영역에 걸쳐 글로벌 기업들의 OEM을 자처하며 국가 경제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지금은 노동력이 더 저렴한 중국, 동남 아시아로 제조의 중심이 넘어갔지만, 수십년 간 축적한 제조 기술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이 자산을 더 의미있게 활용하려면 고유한 브랜드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그 오리지널리티를 디자인이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대만이 디자인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습니다. 2003년 대만 디자인 센터(Taiwan Design Center) 설립을 시작으로 매년 대만 디자인 엑스포(Taiwan Design Expo), 크리에이티브 엑스포 대만(Creative Expo Taiwan), 프레쉬 타이완(Fresh Taiwan) 등 각종 디자인 행사를 개최하고, 2016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면 도시 특유의 지역성과 사회문화적 개성을 1년 내내 디자인으로 풀어내는데, 당시의 테마는 ‘적응의 도시 – 역동하는 디자인(Adaptive City – Design in Motion)’이었습니다. 세계 정세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해 온 대만의 과거를 표현함과 동시에, 앞으로 대만 디자인이 걸어야 할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이제 대만에서 디자인은 더 이상 국가 주도형 사업이 아닙니다. 민간에서도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힘을 보태며 역동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호텔, 갤러리, 문화센터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플레이 디자인 호텔도 그 중 하나입니다.

 

현재 투숙객 대부분이 외국인이며, 40~60%가 디자인 관련 종사자입니다. 캐나다 가구 디자이너, 태국 유통업자, 일본 출판사 등 각국 관계자들이 대만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자 이 곳을 방문하는 등 실제 비즈니스 기회로도 연결됩니다. 대표적으로 나호 오가와도 수년 전 이 호텔에서 숙박한 것을 계기로 나호 셀렉션룸의 큐레이션을 맡고, 대만 일러스트레이터 샤오잉 구(Siaoyin Gu)를 호텔로부터 소개받아 대만에서 공동 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투숙객의 피드백과 판매량을 참조해 비치된 디자인 제품의 프로토 타입을 개선하고, 대량 양산을 결정하는 등 진화의 디딤돌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각국의 디자인 관련 종사자들이 모이는 국제 디자인 전시회라도 연 것 같은 효과를 낸 셈입니다.

 

사실 팅한 천은 빅 픽처 너머에 엔드 픽처를 숨겨 두었습니다. 레스토랑 같은 상업시설에서도 플레이 디자인 호텔의 운영 방식과 철학을 구현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커틀러리부터 가구까지 일상적인 오브제를 통해서도 대만의 문화를 담아낼 수 있고, 더 많은 고객과 접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엔드 픽처지만 막연한 미래는 아닌 듯 합니다. 지금과 같은 진정성이라면 ‘플레이 디자인 레스토랑’, ‘플레이 디자인 카페’를 볼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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