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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 않아도 팔리는 잡지 – 샤오르즈

타이베이의 ‘샤오르즈(小日子)’는 팔지 않아도 팔리는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잡지의 내용을 바꾼 것도, 잡지의 디자인을 혁신한 것도 아닙니다. 대신 잡지에 머무르지 않고, 매장을 열었습니다. 물론 매장을 연다고 해서 잡지가 팔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샤오르즈는 잡지를 닮은 매장을 열어 잡지를 브랜딩하는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잡지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에 잡지로 머무를 수 있었던 샤오르즈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송로 버섯은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손꼽힙니다. 귀한 풍미만큼이나 채취하는 방법도 범상치 않습니다. 산 속이나 나무 기둥 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버섯과 달리, 땅 속에서 자라는 송로 버섯은 사람이 눈으로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돼지’를 이용합니다. 의외로 돼지는 매우 민감한 후각을 갖고 있어, 땅 속에 묻힌 송로 버섯을 기가 막히게 찾아 냅니다. 타이베이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구(蘑菇)’는 이런 돼지의 예리한 코를 활용해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다소 엉뚱한 듯하지만, 의미를 알고 보면 그럴 듯합니다.

 

 

<<< 돼지의 코를 모티브로 만든 모구의 브랜드 로고입니다.

 

모구는 중국어로 ‘버섯’이라는 의미로, 돼지 코는 모구의 예리한 관찰력과 유머 감각을 상징합니다. 돼지가 사람을 이끌고 송로 버섯을 찾아 내듯이 모구가 사람들을 선도하여 생활 속 명물을 찾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모구는 2003년 유기농 면과 천연 염색 기법을 활용한 티셔츠를 판매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의류, 가방, 생활용품, 식료품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을 판매합니다. 판매 제품의 디자인에 대만의 소박한 생활 문화를 반영한 것이 특징입니다. 중산(中山)에 위치한 본점에서는 편집숍과 더불어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 타이베이 중산에 위치한 모구 본점입니다. 1층의 편집숍에서는 의류, 가방,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고, 2층의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판매합니다.

 

<<< ‘대만의 100가지 장면’이라는 이름의 헝겊 배지는 모구의 스테디 셀러입니다. 상자 1개에 4개 뱃지가 들어 있는데, 배지 디자인의 모티브는 대만을 상징하는 소재들입니다.

 

감도있는 라이프스타일 숍이 넘쳐나는 타이베이에서 모구가 긴 세월 동안 명성을 유지하고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독립 간행물인 ‘모구쇼우티에(蘑菇手帖)’의 공이 컸습니다. 모구쇼우티에는 모구가 2003년 티셔츠 라인을 런칭하고, 모구 홍보를 위해 발행한 무료 증정용 잡지로 시작했습니다. 책, 주말 여행, 가정식, 별, 생활 용품, 자연의 색깔 등 소박한 콘텐츠들을 다루며 창간 이후 6개월마다 한 번씩 발행되었습니다. 점차 모구쇼우티에의 팬층이 생겨나면서 유료 잡지로 전환되었습니다. 현재는 대만을 대표하는 독립 간행물로 평가 받으며 당당히 모구 매장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모구 매장에서 유료로 판매되는 잡지 모구쇼우티에입니다.

 

이처럼 잡지는 브랜드의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매장으로 보여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콘텐츠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자체만으로 독립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번 인정받기 시작하면 쉽게 넘볼 수 없는 저력이 됩니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콘텐츠의 힘을 가진 잡지가 매장을 열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타이베이의 ‘샤오르즈(小日子)’입니다. 샤오르즈는 잡지로 시작한 브랜드지만, 잡지의 아이덴티티를 매장에 구현하면서 브랜드를 완성했습니다. 매장이 된 잡지, 샤오르즈에서 잡지의 미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1. 일상을 담는 잡지

 

잡지의 종류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여성지, 남성지, 아동지 등 인구통계학적 분류를 기준으로 나누기도 했고, 최근 주류로 자리 잡은 잡지들은 패션, 디자인, 경제, 자동차 등 관심사를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패션’이라는 분야 안에서도 누군가는 최신 패션 트렌드나 럭셔리 패션에 관심이 있을 수 있지만, 또 누군가는 일상적으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패션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샤오르즈는 기존의 잡지 분류 체계와 달리 분야를 관통하여 ‘일상’에 관련된 콘텐츠를 다룹니다. 그래서 매 호마다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들을 선정합니다.

 

샤오르즈는 현대 대만의 일상 생활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상적인 음식, 유행하는 제품, 최근의 현상 등 대만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한 작은 소재들을 잡지에 싣습니다. 스스로를 ‘일상을 향유하는 잡지(享生活誌, Life Design Magazine)’라고 소개하며 사람들이 삶을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제안하는 매체가 되는 것을 지향합니다. 샤오르즈는 잡지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샤오르즈의 독자들은 다른 사람의 일상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 샤오르즈는 매 호마다 대만의 일상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2012년 4월, 창간호의 주제인 ‘아침식사를 합시다(Let’s Breakfast)’를 시작으로, 이후 ‘생활 공간 속의 그림, 포스터, 사진(Painting, Posters&Photography in Living Space)’, ‘음악없이는 삶도 없다(No music, No Life)’ 등 독자들이 일상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수십 개의 주제들을 다뤄왔습니다. 그 중에는 실연 후의 일상을 다룬 ‘연애 후(After Love)’,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관점을 다룬 ‘인생에게(Dear Life)’ 등 일상을 제안하는 것을 넘어 일상에 깊이를 더하는 주제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대를 기록하는 잡지인 만큼, 시대의 현실적인 고민과 정감을 나타내는 주제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제와 상관없이 매월 독자들이 관심을 갖거나, 가보면 좋을 만한 전시회, 강연 등을 달력에 표시하여 소개하기도 합니다. 샤오르즈 잡지 한 권이면 일상이 풍성해집니다.

 

<<< 샤오르즈 잡지의 캘린더에는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그 달의 이벤트 일정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2. 잡지가 팔리는 매장

 

가벼우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샤오르즈는 기존에 없던 카테고리를 다루며 창간 이후 업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러던 샤오르즈가 잡지에 머무르지 않고, 2016년부터 매장을 오픈하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샤오르즈는 매장을 오픈하기 전, 대만의 경제 불황과 종이 매체에 대한 꾸준한 수요 감소로 인해 폐간 위기를 맞게 됩니다. 더 이상 잡지만으로는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제책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떠올린 것입니다. 종이 매체를 읽는 사람들이 감소하는 가운데, 종이 잡지를 계속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다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더 많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한 오프라인 매장을 선택한 샤오르즈의 과감한 시도에는 잡지의 컨셉만큼이나 통찰력있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 샤오르즈 매장 전경입니다.

 

샤오르즈의 매장은 ‘샤오르즈의 3D’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잡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는 느낌이 들도록 공간을 구현했습니다. 창간 이래로 축적되어 온 샤오르즈의 브랜드를 유형의 것으로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매장 안에 잡지보다 문구, 가방, 의류 등 샤오르즈가 큐레이션했을 법한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이 더 많은 이유입니다. 하드웨어인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소프트웨어인 잡지를 브랜딩하여 잡지가 잘 팔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매장 한 켠에서 카페도 함께 운영해 수익 모델을 다원화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매장만으로도 수익 모델이 되면서 잡지와 시너지를 냅니다.

 

 

<<< 샤오르즈 매장 공간의 대부분은 잡지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할애됩니다.

 

 

<<< 샤오르즈 매장 내 카페에서는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테이크 아웃 음료들을 판매합니다.

 

샤오르즈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들의 나이대는 잡지의 독자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로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독자들이 샤오르즈 잡지를 찾습니다. 이 세대에는 샤오르즈의 독자들처럼 잡지를 읽는 사람들도 있지만, 종이 매체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은 다릅니다. 잡화나 의류를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에는 기꺼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샤오르즈는 오프라인 매장을 고객 기반을 넓히는 계기로 활용합니다. 샤오르즈의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하면서도 밀레니얼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들을 큐레이션하여 더 많은 밀레니얼들이 샤오르즈 매장에 찾아오게 만듭니다. 매장에 방문한 고객들은 잡화를 구매하면서 자연스럽게 잡지도 접하게 됩니다. 제품 판매를 통해 잡지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한 이후 잡지 판매량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잡지를 적극적으로 팔지 않고도 잡지를 파는 셈입니다.

 

#3. 잡지를 닮은 매장

 

영국 런던에는 잡지 모노클(Monocle)이 운영하는 더 모노클 숍(The Monocle shop)이 있습니다. 더 모노클 숍에서는 단순히 물건을 큐레이션하고 유통하는 것이 아니라, 모노클이 애정하는 브랜드들과 함께 기획한 컬래버레이션 제품들을 판매합니다. 이런 컬래버레이션 제품들은 모노클 잡지가 단순히 광고 지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콘텐츠로 재생산해내는 애드버토리얼 기사를 쓰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처럼 잡지의 세계관을 반영한 매장은 잡지의 존재감에 힘을 더하고, 잡지의 팬층이 늘어날 수록 매장의 자리도 공고해지는 선순환이 생겨납니다.

 

샤오르즈의 매장도 잡지를 실체화하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판매하는 제품들이 잡지의 세계관 안에 있습니다. 샤오르즈에게 제품 판매는 중요한 수입원이지만, 잡지를 모태로 하기 때문에 잡지와 분리시켜 독립적으로 운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샤오르즈의 잡지가 대만의 현재를 기록하듯, 제품 또한 대만의 현재를 기록합니다. 대기업이나 규모가 큰 브랜드들의 제품이나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니라, 대만에서 만든 수공예 제품이나 규모가 작은 신생 브랜드의 제품들이 주를 이루는 이유입니다. 잡지에 소개된 제품들을 판매하거나 제품을 만든 사람이나 브랜드를 함께 소개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 샤오르즈는 판매하는 제품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나 브랜드도 함께 소개합니다.

 

샤오르즈는 잠재력 있는 작은 대만 브랜드들을 발굴하기도 하지만, 자체 제작 상품을 기획하기도 합니다. 배지, 스티커, 엽서 등은 대표적인 자체 제작 상품들인데, 위트있는 디자인과 문구로 샤오르즈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꺼져’, ‘난 좋은 사람이니까 일 시키지마’, ‘멘붕이다’ 등 한 번쯤 속으로 생각할 법하지만 함부로 내뱉지는 못했던 소비자들의 귀여운 속마음을 읽고 대신 드러내준 덕분입니다. 누구라도 부담없이 지갑을 열 수 있을 만한 가격대의 가벼운 제품으로 개인의 개성과 심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샤오르즈의 자체 제작 상품들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 샤오르즈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배지, 스티커 등은 위트있는 문구와 귀여운 일러스트 덕분에 인기가 좋습니다.

 

팔지 않아도 팔리는 잡지의 미래

 

잡지를 닮은 매장의 성과는 어떨까요? 2016년 타이베이 궁관(公館)역 근처에 첫 번째 매장을 낸 것을 시작으로, 현재 타이베이에만 6개 지점을 두고 있습니다. 타이베이의 매장들은 특색있는 주요 상권에 위치해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대만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가, 직장인들이 많은 오피스 타운, 힙한 상점들과 오래된 가게들이 어우러진 골목 상권, 해외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관광지 등 샤오르즈의 무한한 가능성만큼이나 넓은 시장에 샤오르즈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 안으로 타이중과 타이난에 새로운 매장을 열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잡지에서 시작한 매장이 3년 만에 이뤄낸 성장세치고는 매우 탄탄해 보입니다.

 

잡지를 위한 매장인 만큼, 잡지의 성장도 궁금해 집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생기면서 판매 부수가 늘어난 것은 물론, 물리적인 매장보다 더 발 빠른 확장이 가능한 잡지는 벌써 해외로 진출했습니다. 꾸준한 증가세에 힘입어 2018년 한 해동안 약 2만 부가 발행되었는데, 그 중 절반은 대만에서 판매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대만 밖 중화권에서 판매되었습니다. 또한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샤오르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공감하는 일본 팬 생기면서 올해에는 일본어 버전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발 없는 콘텐츠의 앞으로가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광고주의 스케일도 점점 진화해 최근에는 아우디 등의 거대 기업들이 샤오르즈 잡지에 광고를 싣기 시작했습니다. 잡지가 브랜드화에 성공했다는 증거입니다. 잡지뿐만 아니라 잡지를 닮은 매장 또한 광고 매체로 활용될 만큼 브랜드 파워가 생겨났습니다. 어디까지나 잡지를 위한 매장인 만큼, 잡지의 정체성을 강화하거나 고객들이 관심 있을만한 영화 포스터 등을 매장에 붙여 두고 광고 수익을 얻습니다. 샤오르즈는 잡지의 상업성과 잡지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며 오래 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여행을 여행답게 만듭니다.”

여행의 묘미를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계획한 일정을 숙제하듯 소화할 때가 아니라, 뜻밖의 상황을 느닷없이 마주칠 때입니다. 예정에 없었던 대화, 있는 지도 몰랐던 공간,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 경험하기 어려웠던 현상, 기대하지 않았던 디테일 등이 여행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세우는 건 중요하지만, 우연이 끼어들 여지를 남겨둘 필요도 있습니다. <생각이 기다리는 여행>은 여행에서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선물해 준 생각지도 못한 생각들에 대한 기록이자, 계획할 수 없었기에 더 소중한 여행의 조각입니다.

 

참고문헌

• 샤오르즈 홈페이지

• 《本の未来を探す旅台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