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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100파운드를 의미있게 날리는 방법

 

계획을 세우는 일은 중요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도 있습니다. <퇴사준비생의 런던>을 런칭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퇴사준비생의 도쿄> 출간 후에 6개월 정도의 간격을 두고 <퇴사준비생의 런던>을 런칭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런던으로 취재를 떠난 것도 <퇴사준비생의 도쿄> 출간 전인 2017년 5월이었습니다. 이 때까지는 계획이 있었는데, 역설적이게도 <퇴사준비생의 도쿄> 출간 이후 계획이 무너집니다. 기대 이상의 반응에 감사하게도 여기저기서 사업 제휴나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밀려드는 일들을 있는데, 이를 마다하고 <퇴사준비생의 런던>을 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취재 후에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우선 순위에서 밀렸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018년 가을에는 책을 낸다는 계획을 다시 세웠습니다. 물론 가능성을 열어 두었지만 변수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밥밥 리카드, 시크릿 시네마, 카스 아트, 바쉬, 로버슨 와인 등 새로운 목적지들을 추가하기도 했고, 기존의 목적지 중에서도 보강 취재가 필요한 곳들도 있어서 2018년 4월 말에 런던으로 추가 취재를 갔습니다.

 

1년만에 다시 방문한 런던은 여전했습니다. 날씨가 변덕스럽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전통이 있었으니 여전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돈을 냈는데 돈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된 게 아니라 신권이 나와서 구권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신권이 나와도 구권과 병행하면서 쓰지 않느냐는 반문에 그는 일정기간 그랬으나 3월 부터는 더이상 10파운드짜리 구권은 쓸 수 없고, 일반 은행에서도 구권을 취급하지 않으니 돈을 바꾸려면 중앙은행으로 가야한다고 답변해주었습니다.

 

후속 취재를 가면서 환전했던 돈이 아니라 첫번째 취재를 갔을 때 남은 파운드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100파운드(약 15만원) 가량이 남아서 나중에 런던 갈일 생길 때 쓰려고 한화로 환전하지 않고 보관해 둔 돈이었습니다. 환전 수수료 아끼려다가 돈을 쓸 수 없게 된 셈이었습니다. 물론 중앙은행가서 돈을 바꾸면 되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그 순간 농담처럼 떠돌던 빌 게이츠 우화가 뜬금없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길거리에 100달러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고 합니다. 초당 버는 수입이 100달러 이상이니 100달러를 집으러 허리를 굽히며 몇 초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본업에 충실하는게 더 이득이라는 우스갯소리였습니다. 당연히 빌 게이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철지난 농담이 불현 듯 생각나서 중앙은행에 가서 돈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그 시간에 다른 취재를 갈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기 시작했습니다. 15만원 가량은 버리기엔 아까운 돈이었지만, 시간당 출장비를 고려하면 취재를 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 같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침 일찍 중앙은행을 가기로 결론지었습니다. 어차피 취재의 대상이 되는 곳들 중에 오전 10시 전에 문여는 매장이 거의 없으니, 잠을 포기하고 일찍 은행에 가서 돈을 바꾸면 체력적으로는 부담이 되겠지만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중앙은행이 있는 뱅크역에 도착했습니다. 중앙은행이 위치한 쪽의 출구를 찾으려고, 무심코 주변 안내도를 봤다가 그 자리에 멈춰서게 됩니다. 부조로 주변 안내도를 위엄있게 감싼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지도로 표시하지 않고 일러스트로 주변 안내를 하는 점이 더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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