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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그널을 대하는 자세

뜻밖의 기회가 오면 촉이 곤두섭니다. 일회성 행운으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지속성을 가진 사업으로 발전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도 시그널을 해석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책 제목에 ‘퇴사준비생’이라는 키워드가 있어서 여행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 고객 수요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 외로 여행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습니다.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과 달리 첫 기업 고객인 시세이도는 인센티브 트립의 형태로 여행 프로그램을 신청했습니다.

 

일본 기업인 시세이도가 도쿄 여행 콘텐츠 기획을 의뢰한 것도 드문 사례였고, 여행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마저도 파격적일 만큼 예외적이어서 기업 고객의 수요에 대한 시그널을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뜻밖의 기회가 일회성 행운으로 지나가나 싶더니, 이내 두번째 시그널이 발생했습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여행 프로그램을 개인적으로 다녀오신 분의 추천으로 AK 플라자에서 인센티브 트립 형태로 여행 프로그램 신청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 때까지도 기업 고객 대상의 여행 프로그램을 사업 기회로 바라보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시그널의 세기를 감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시그널이 증폭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AK 플라자의 담당자에게 추천을 받은 삼성화재 담당자가 여행 프로그램을 신청하자, 뜻밖의 기회가 지속성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삼성화재의 도쿄 여행 프로그램은 실리콘밸리 여행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퇴사준비생의 런던> 책 작업을 마무리하는 동안에는 잠잠하다가 책 작업이 끝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시그널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11월에만 경희대 국제대학, 롯데 렌탈, 카카오 메이커스 등의 기업 고객들과 함께 했습니다.

 

뜻밖의 기회가 만들어낸 재무적 성과도 반가웠지만,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도 반가웠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 고객이 속한 산업의 일본 기업 매장들을 목적지에 추가하고 싶어하시는 니즈가 있었는데, 그 니즈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스터디를 하면서 새로운 곳들과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롯데 렌탈을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사전조사를 할 때도 뜻밖의 발견을 했습니다.

 

여행 프로그램 중에 렌터카 매장 방문을 요청하셔서 사전답사를 갔습니다. 여러 매장 중 최적의 매장을 찾기 위해 몇 곳을 다녀왔는데, 그 중 한 곳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아이디어를 만났습니다. 차가 렌터카 주차장 입구를 드나들기 위해서는 경사면인 인도를 가로질러야 구조라 인도를 다니는 자전거와 차량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도에 폴대를 지그재그 모양으로 설치했습니다. 자전거 속도를 줄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안전에 대한 세심한 배려입니다.

 

곳곳에 무심한 듯 아이디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풍경을 보며 마음의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했습니다. <퇴사준비생의 런던> 책 출간과 샌프란시스코 여행 콘텐츠 준비로 6개월 여만에 도쿄를 방문했는데, 도쿄는 여전했습니다. 감흥을 주체할 수가 없어 별다른 생각없이 옆에 있던 민세훈 이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런던에 있을 때는 런던이 좋았고,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는 샌프란시스코가 좋았는데, 도쿄에 오니까 도쿄가 좋다’는 말에 그가 인사이트 충만한 위트로 응수해주었습니다.

“형이 있는 곳이 곧 좋은 곳이지요.”

그가 농담처럼 던진 리액션에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수처작주’라는 사자성어와 함께,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여행’이 떠오르며, 일상 여행자로서의 삶에 대한 감각이 새록거렸습니다. 뜻밖의 기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뜻밖의 생각을 만나게 해주기까지 하니 뜻밖의 기회에 촉이 곤두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