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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음식의 맛보다 운영의 묘가 빛난 식당

서울에서 먹는 끼니와 다를 바 없는데, 평소와 달리 여행지에서 식당을 고를 때면 더 신중해집니다. 매일 먹는 끼니여도 그 곳에서는 일생에 단 한 번일 수 있는 경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그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혹은 그 곳에서 유명한 식당들을 찾아서 들어갑니다. 하지만 여행이 일상이 되거나, 식사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을 때에는 자연스레 여행지에서의 식당 선택도 끼니를 때우는 곳으로 바뀝니다.

 

<퇴사준비생의 런던>을 취재하기 위해 런던 첼시 FC 구장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영국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축구에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싶어 첼시의 홈구장인 ‘스탬퍼드 브리지’에 갔습니다. 축구장의 웅장함에 가슴이 트이고 선수들의 흔적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축구 경기가 없는 한낮에 찾아오는 팬들의 팬심을 느낄 수는 있어도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발견하긴 어려웠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풀햄 브로드웨이’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점심을 먹어야 해서 지하철역 푸드코드에 있는 ‘Wagamama’라는 식당을 별다른 고민없이 들어갔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음식 맛은 평범했지만, 기대와 달리 식당을 운영하는 방식은 비범했습니다.

 

메뉴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각자의 자리 앞에 놓인 종이 테이블보에 볼펜으로 크게 숫자를 적습니다. 무슨 숫자인가 하고 봤더니 메뉴판에 넘버링 되어 있는 번호를 적는 것이었습니다. 숫자를 왜 표기해두는 건지 궁금했는데, 답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종업원은 음식을 가져오자마자 누가 어떤 음식을 시켰는지 묻지 않고도 주문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했습니다. 종이 테이블보에 쓰여있는 숫자를 보고 음식의 주문자를 판단한 것입니다.

 

무릎을 쳤습니다. 별 거 아닌 듯 보이지만, 맥락을 고려하면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첼시 FC 구장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면 풀햄 브로드웨이 지하철역에 내려야 합니다. 저녁 경기가 있는 날은 경기장 주변에 먹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관객들이 지하철 역 푸드코드에서 식사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손님들이 몰려들텐데, 식당 입장에서는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으려면 조리 시간, 음식 운반 시간, 먹는 시간 등을 줄여 회전율을 높여야 합니다.

 

종이 테이블보에 적어둔 숫자 덕분에, 이 식당에서는 음식을 내려 놓을 때 주문자를 물어보는 과정을 생략해 음식 운반 시간 마저도 줄였습니다. 특히 단체로 손님들이 올 경우 누가 어떤 음식을 시켰는지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친구들끼리 대화를 하다보면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이 안중에 없을 때도 있고, 자기가 어떤 음식 시켰는지 몰라 허둥거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때 숫자를 적어 음식을 나르는 방식은 아날로그적이긴 하지만 디지털만큼이나 효율적으로 운반 시간을 단축시켜줍니다. 친구들끼리 모여 축구장을 찾는 경우가 보통이기에 이 식당이 낸 아이디어의 효과는 더 큽니다.

 

지하철역 푸드코트에 있는 Wagamama처럼 단골 고객이 아니라 유동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에서는 어쩌면 음식의 맛을 끌어올리기 보다 운영의 묘를 더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