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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한된 공간에서 매출을 늘리는 기술

해외에서의 운전이 어려운 건 자동차가 달라서가 아닙니다. 운전 방향이 반대인 지역이 아닌 이상 자동차의 기본 구조는 유사하기 때문에 운전의 기술만 있다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도로 시스템이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 시스템에 적응하기 전까지는 초보 운전자처럼 갈팡질팡하거나 우왕좌왕할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16 ‘금문교 수익모델 파헤치기’에서 공유했듯이, 샌프란시스코도 운전의 난이도가 높은 지역입니다. 신호 없는 사거리를 수차례 지나며 구비진 언덕을 넘어 다녀야 하고, 전기로 다니는 트램과 함께 도로를 써야 하며,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로 비보호 좌회전을 해야하는 등의 상황을 마주해야 합니다. 운전 중에 겪는 낯선 환경만큼 주차할 때도 적응해야할 상황에 봉착합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미국에서는 길거리 주차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길거리에 차를 대고 무인 주차 미터기에서 현금 혹은 카드로 주차할 시간만큼 미리 계산을 하는 방식입니다. 주차 요금 계산을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계산을 하지 않고 주차를 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주차 단속에 걸리면 큰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시민 의식에 맡기되, 지키지 않으면 큰 손해를 감수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길거리 주차 시스템 자체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주차를 하려고 하면 아리송한 부분이 생깁니다. 도로와 인도를 구분짓는 경계석 또는 주차 미터기에 빨간색, 녹색, 노란색 등의 색이 칠해져 있는데,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일반 주차 구역과 다를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각각의 색이 가진 의미를 모르면 주차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차는 해야겠는데, 색깔이 마음에 걸려 찾아봤습니다.

 

경계석이 빨간색으로 되어 있다면 예상 가능하듯이 주차 금지 구역입니다. 빨간색 경계석을 제외하면 주차가 가능한 구역입니다. 경계석 노란색으로 되어 있는 구역은 상업용 차량 전용인데, 이 구역의 주차 미터기에 노란색이 붙어 있으면 모든 상업용 차량이 주차 가능하고 빨간색이 붙어 있으면 바퀴가 6개 이상의 차량만 주차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파란색 경계석 또는 파란색 주차 미터기는 장애인 전용입니다. 색이 칠해져 있다면 일반 차량은 주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흰색과 녹색은 일반 차량을 위한 색입니다. 흰색 경계석은 5분 내로 승하차 할 수 있는 구역이고, 녹색 경계석 또는 녹색 미터기는 30분 이내의 단기 주차만 가능한 구역입니다.

 

길거리 주차에 대한 룰을 이해해도 주차 공간이 없다면 공용 주차장으로 가야 합니다. 주차할 곳을 찾아 유니언 스퀘어 지역의 공용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주차 요금표가 눈에 띄었습니다. 시간당 주차 요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대별로 시간당 주차 요금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가 중간값인 3달러였고, 주차 수요가 많아지는 오후 시간대에는 중간값보다 2배 까지 높았으며, 야간 시간대는 중간값보다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었습니다. 주차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시간대별로 가격을 달리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가격 전략입니다. 서울에서도 야간 할인, 주말 할인 등 가격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을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고도화된 가격 체계였습니다.

 

효과가 있을까요? 중간값인 3달러로 시간당 요금을 고정하는 경우와 비교해봤습니다. 주차장의 주차 공간 점유율이 24시간 동안 50%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시간대별로 요금을 달리했을 때가 중간값으로 요금을 고정했을 때 대비 2% 높아집니다. 주차 공간 점유율이 달라져도 24시간 동안 점유율이 동일하다는 전제면, 시간대별로 요금을 달리했을 때의 매출이 항상 2% 높습니다.

 

주차 공간 점유율을 시간대별로 달리해서 시물레이션해보면 차이가 더 극명해집니다. 3달러 시간대의 점유율을 50%로, 중간값보다 높은 시간대의 점유율을 70%로, 낮은 시간대의 점유율을 30%로 가정하면 시간대별로 요금을 달리했을 때의 매출이 17% 가량 높습니다. 중간값보다 높은 시간대의 주차 공간 점유율이 높아질 수록 매출의 차이가 더 커집니다.

 

이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만큼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매출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생각의 틀을 깨는 가격 체계 덕분에 주차할 공간을 찾아 헤매다 발견한 주차장보다 주차장에서 발견한 주차 요금표가 더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