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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선의 미학

꼭 가보고 싶던 박람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 또는 ‘세계 3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소비재 박람회 암비엔테(Ambiente)입니다. 하지만 사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가야하는 비용을 생각하니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코엑스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괜히 시간과 돈을 들여 멀리까지 가서 하는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하니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사비를 털어 프랑크푸르트로 갔습니다.

 

수식어에 걸맞게 4일을 꼬박 돌아다녀 겨우 다 볼 정도로 규모가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규모보다 더 놀라웠던 건, 박람회장을 채우고 있는 브랜드들이었습니다. 이름 없고 그저 그런 브랜드들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브랜드,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 떠오르는 신진 브랜드 등 엣지를 뽐내는 브랜드들로 가득했습니다. 새로운 브랜드들을 발견하는 재미와 신제품을 접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각 브랜드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연출한 공간 구성을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진작에 다녀왔으면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또는 브랜드에 대한 시야가 더 넓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박람회장과 그 주변에서 마주친 틀을 깨는 아이디어에 프랑크푸르트의 매력지수가 더 높아졌습니다.

 

박람회장을 돌아다니다가 생각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생각해야 하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변기 사이를 가리는 가림막을 벽면에 직각이 아니라 사선으로 배치했습니다. 덕분에 화장실 입구에서 보면 소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선으로 각을 틀자 가림막이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해냅니다. 또한 대변기 칸막이도 네모 반듯하게 구성하지 않고 입구 부분을 사선으로 처리했습니다. 병풍처럼 접히는 구조여서 칸막이 문을 열고 닫을 때 문 밖에 있는 사람을 의도치 않게 치거나, 반대로 안쪽에서 문을 열기 위해 칸막이 안에서 몸을 불편하게 틀게 될 일도 없습니다.

 

박람회 일정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근처 몰에 있는 맥도널드에 갔습니다. 걷는 양이 많았기에 햄버거를 허겁지겁 먹고, 트레이를 반납하려는데 허걱하게 하는 아이디어가 숨어 있었습니다. 트레이 수거함에 트레이를 받치는 지지대는 보통 벽면에 직각으로 붙어있는데, 맥도널드에서 본 트레이 수거함에는 지지대가 사선으로 달려있었습니다. 이유를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트레이 지지대를 사선으로 설계하니 구조적으로 트레이를 자연스럽게 수거함 안쪽으로 넣게 됩니다. 그래서 수거함에 반쯤 걸친 트레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또한 지지대를 사선으로 만들어 놓으면 트레이 수거함을 끌고 내리막 길을 갈 때도 효과가 있습니다. 사선의 트레이 지지대에 트레이가 걸려 앞으로 쏟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을 틀어 사선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여러 문제가 해결됩니다.

 

저녁을 먹고 당연한 듯 숙소에서 마실 음료를 사기 위해 마트를 갔는데, 당연하지 않은 형태의 바구니를 발견합니다. 네모로 생긴 보통의 바구니와 달리 사선을 활용해 디자인한 바구니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직각으로 이루어진 네모가 아니어서 사선에 따라 바구니를 들어야 하는 방향이 직관적이었습니다. 방향에 맞제 바구니를 집어 들자 또 한 번 사선의 효과가 드러납니다. 몸쪽의 면이 사선으로 움푹 들어가 있어 바구니를 몸쪽으로 밀착시켜 들 수 있었고, 덕분에 지렛대 원리가 작동해 바구니를 더 가볍게 들 수 있었습니다. 바구니의 무게감을 줄여 쇼핑하는 할 때의 불편함을 최소화시킨 것입니다.

 

꼭 가보고 싶던 박람회인 암비엔테에서 가슴 벅찬 감동과 각을 트는 아이디어를 만난지 꼬박 3년이 지났습니다. 꼭 다시 가볼 것이란 다짐을 3년 동안 숙성시킨 셈입니다. 2019년의 암비엔테가 또 지나갔기에 다짐의 숙성 기간이 1년 더 늘어났지만, 내년에는 사업과 연계시킬 방법을 찾아 팀원들과 함께 같이 가보리라는 기대를 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