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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햄버거를 고급 요리로 격상시키는 방법

‘Proper’

 

<퇴사준비생의 런던>을 취재하기 위해 런던에 처음 갔을 때, 거리 곳곳에서 눈에 종종 들어온 단어입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Proper’란 단어를 광고나 슬로건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와 전통에 맞춰 제대로 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는다는 뜻일 수도, 반대로 그동안의 결과물들과 달리 시대에 맞게 제대로 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둘 다를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뜻으로 쓰였건 오리진의 도시인 런던이라 ‘제대로 된’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보이는 Proper 중에서도 직관적인 공감이 갔던 조합은 햄버거 가게에 적힌 Proper 였습니다.

 

‘Proper hamburgers’

 

햄버거 가게 ‘바이런(Byron)’의 슬로건입니다. 시장 조사를 한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영국의 햄버거 시장을 프랜차이즈 매장이 득세해 온 것이라면, 제대로 된 햄버거를 판다는 구호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이런은 사전 조사 리스트에도 있었고 현지 답사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햄버거 가게였지만, 햄버거 가게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후순위로 미뤄둔 곳입니다.

 

하지만 후속 취재 차 런던에 두번째 갔을 때는 들르기로 결정합니다. 첫 취재 때와 달리 지하철역에 바이런 광고가 걸려 있고, 매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걸 보면서 성장의 비결이 있을 거라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밑진다 하더라도 끼니는 채운다는 마음으로 들른 바이런에서 햄버거 가게에 대한 선입견이 깨집니다.

 

주문하기 전까지 펼쳐진 풍경은 평범한 햄버거 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점이라곤 카운터에 바이런의 레시피 북이 놓여 있고, 메뉴판의 설명이 위트 있으며, 바이런이 자체 제작한 소스가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햄버거를 주문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이 되물었습니다.

 

‘고기는 어떻게 익혀드릴까요?’

 

이 질문 하나에 햄버거 가게가 아니라 스테이크 하우스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햄버거를 고급 요리로 격상시키는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서울에도 패티 고기 굽기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수제 버거집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문할 때 선택 여부를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굽기 정도를 달리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고객 요청시 제공하는 부가 서비스 정도인 셈입니다. 반면 바이런처럼 햄버거를 주문하는 과정에서 패티 굽기 정도를 묻는 것은 햄버거를 보는 관점을 달리하는 접근입니다.

 

햄버거의 핵심을 패티로 정의하고 그 패티를 적절하게 구워서 혹은 햄버거의 본고장인 미국 햄버거 브랜드에서나 볼 수 있는 주문 방식이어서 Proper란 단어를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된 햄버거’라는 슬로건이 어색하지 않은 햄버거였습니다.

 

만약 런던을 갈 일이 있어 바이런에 들르신다면 햄버거와 함께 ‘Stacked fries’를 시켜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대로 된 감자튀김과는 거리가 있지만, 평범한 감자튀김 위에 장조림 같은 고기 그리고 국에 넣을 법한 파와 고추를 듬뿍 쌓아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맛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런이 슬로건으로 내걸 듯 제대로 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런던은 더이상 음식 맛이 없는 도시가 아니라 장르를 불문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