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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에게도 패스트푸드를 허하라 – 마나

‘비건 패스트푸드’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홍콩의 ‘마나(Mana)’를 보며 편견을 깨보시기 바랍니다. 비건 메뉴만 판매하는 마나는 20석뿐인 매장에 하루 평균 500명의 고객을 맞이합니다. 또, 비건 커피를 출시하고, 늘 선택이 제한적이던 비건들에게 메뉴를 고도로 맞춤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패스트푸드, 카페, 맞춤화 모두 잘 생각해보면 그간 채식씬에서 결여된 부분들입니다. 당연한 것을 새로운 카테고리에 접목하면 기회가 생깁니다.

 

Quick View

• 들어가며
• 비건을 위한 ‘커피’
• ‘패스트’ 슬로우푸드
• 채식에도 테이스트가 있다
• 패스트푸드를 만드는 슬로우 스토어

 

본 콘텐츠는 읽는 데 총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일본 → 싱가포르 → 필리핀 → 말레이시아 → 대만 → 태국 → 중국 → 한국 → 홍콩 → 인도네시아 → 인도 → 베트남 → 캄보디아

 

스타벅스가 아시아에 진출한 순서입니다. 트렌드 세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홍콩이 뒷쪽에 있어 의아합니다. 스타벅스가 1996년 첫 해외 진출을 한 후 홍콩에 오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습니다. 인도네시아 외에는 2010년 이후에 진출했기에 사실상 거의 꼴찌나 다름 없습니다. 아시아 최고의 국제 도시이고 해외 기업 규제가 느슨한만큼 거의 모든 글로벌 브랜드가 홍콩을 해외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는 하는데, 유독 스타벅스의 홍콩 진출이 늦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커피 소비국으로서는 홍콩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 해 바삐 걸어다닐 것 같은 도시 이미지와는 달리 홍콩은 인당 커피 소비량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스타벅스가 홍콩에 진출했던 2000년 즈음 통계에 따르면 홍콩은 인당 커피 소비량이 154개국 중 80위에 불과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홍콩은 중국과 영국의 영향으로 커피보다 차를 주로 마십니다. 지난 20여 년간 인당 차 소비량 20위권 내외를 유지해 왔습니다. 또한 객단가가 낮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며 체류 시간이 긴 카페 단독으로는 홍콩의 살인적인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카페와 식당이 결합된 종합 음식점 ‘차찬탱(茶餐廳)’이 대중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 미국, 호주, 유럽 국가들이 1990년대부터 서드 웨이브 트렌드에 진입하며 저마다의 커피 문화를 형성해 가던 한편, 홍콩은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스타벅스와 같은 세컨드 웨이브 카페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선도하기보다는 따라가기 바쁘던 홍콩의 커피 시장이 2010년대 들어 질적으로 폭풍성장했습니다. 성장의 도화선은 의외의 곳에 있었습니다. 2009년 리얼리티 쇼 <커피 컨피덴셜(品味咖啡)>이 인기를 끌면서 스페셜티 커피*와 바리스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켰습니다. 이듬해 홍콩 바리스타 대회가 출범하고, 세계 바리스타 대회에서 홍콩 1세대 바리스타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전문가이자 직업인으로서 바리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커피 아카데믹스(The Coffee Academics) 등 여러 마이크로 로스터리들이 고객 접점 확대와 교육에 힘쓰며 스페셜티 커피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서드 웨이브 트렌드로의 합류가 늦은 만큼 더 깊고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 중인 가운데 홍콩에 아주 색다른 시도가 있습니다. 홍콩 최초의 비건 커피 전문점 ‘마나!(Mana!, 이하 ‘마나’로 표기)’입니다. 산지와 과정을 중시하는 서드 웨이브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동시에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 스페셜티 커피 : 스페셜티 커피 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100점 중 80점 이상으로 평가받은 커피입니다. 예전에는 결점 여부로만 평가했으니 풍미와 맛을 다각적으로 평가합니다. 와인처럼 원두 재배 지역, 방식, 시기에 따라 풍미와 맛이 다르기에 그 특징을 살릴 수 있도록 블렌딩하지 않고 싱글 오리진으로 적합한 로스팅과 브루잉을 접목합니다. 생산 농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유통 과정을 추적할 수 있도록 주로 직거래나 공정무역으로 유통됩니다. 서드 웨이브 커피 트렌드를 이루는 필수 요소입니다. 

비건을 위한 ‘커피’

채식주의자를 위한 레스토랑은 많습니다. 1인당 육류 소비량으로 전 세계 탑을 달리는 홍콩이지만 의외로 채식 시장도 핫합니다. 하지만 보통 음식이 주연이고 음료는 조연이거나 엑스트라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음식을 먹으러 왔다가 음료를 곁들여 시키지, 음료를 마시기 위해 채식 레스토랑을 굳이 찾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채식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특별히 음료 선택지가 많은 것도 아니고, 일반 카페에서도 아메리카노나 과일 주스를 마신다든지 우유를 두유 등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불편함이 없을까요? 카페의 기존 음료에서 재료를 단순 대체하면 원래 의도했던 조합이 아니기에 맛이 떨어집니다. 음료와 곁들여 먹을 간단한 먹거리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채식 레스토랑을 가자니 카페와 달리 오래 앉아있기 불편합니다. 랩탑을 꺼내는 것도 눈치보이고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지도 않습니다. 또 레스토랑에서는 음료가 비싼 편입니다. 사실은 비건에게도 전용 카페가 필요합니다.

 

 

마나는 바로 이 틈새를 노려 홍콩 최초의 비건 카페를 열었습니다. 포호(Poho)의 한적한 골목에 있는 마나에 가면 해변가의 카페에 온 듯한 청량함이 있습니다. 우드와 초록색 식물로 플랜테리어(Planterior) 되어 있는 매장 안팎으로 손님들이 랩탑을 펼쳐 일을 보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망중한을 즐깁니다. ‘Diet Change, Not Climate Change’, ‘Food that doesn’t cost the Earth’ 등 간단하면서 위트있는 구호가 곳곳에 손글씨 느낌으로 적혀 있어 자연주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일단 공간은 합격입니다. 이제 가장 핵심인 메뉴를 들여다 볼 차례입니다.

 

 

마나의 시그니쳐는 비건을 위한 커피인 브이-커피(V-coffee)입니다. 비건 커피인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라떼 등 유제품이 필요한 음료에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습니다. 마나는 우유를 두유, 귀리 우유로 단순 대체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재료를 바꿔 자칫 부족해질 수 있는 풍미를 보완해 온전하고 독립적인 메뉴를 만듭니다. 그 결과 라떼류의 브이-커피만 5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코코(KOKO)는 생 카카오 버터를 넣어 부드럽고 크리미한 식감을 살리고 초콜릿 향을 더합니다. 카카오 버터가 과하다 싶으면 코코넛 오일과 바나나 향을 가미한 모노(MONO)가 있습니다. 강황을 넣은 디카페인 라떼 자무(JAMU)도 이색적입니다.

 

 

그럼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는 아메리카노는 원래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으니 굳이 비건 커피로 분류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여기에서 브이-커피를 비건이라 부르는 두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마나의 브이-커피는 비건의 철학에 반하지 않습니다. 비건은 단순히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것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해치지 않고, 환경을 보전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소비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아메리카노가 비건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날 많은 대형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이 원두를 햇볕 아래서 재배합니다. 원래 그늘에서 재배하는 것이 원칙이나 햇볕 아래에서 키우면 성장 속도를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커피 나무의 수명을 30년에서 15년으로 절반 가량 줄입니다. 또한 화학 비료, 제초제, 살충제 등을 많이 사용하며 과잉 생산하면 토양의 지력 회복기가 길어져 몇 년 뒤 토지를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해당 토지의 나무와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여러 동식물의 안식처를 뺏는 일이자, 황폐화된 농지 확대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설탕도 성역이 아닙니다. 동물의 뼈를 갈아 탄화시켜 만든 골탄을 설탕 표백에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나가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공정 무역으로 조달한 온두라스의 싱글 오리진 커피를 쓰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퀄리티 때문에 스페셜티 커피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생산, 유통, 가공되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서드 웨이브 내에서도 남다른 행보입니다. 이처럼 마나는 채식에서 보기 힘들던 ‘카페’라는 카테고리를 개척했습니다.

 

‘패스트’ 슬로우푸드

사실 마나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포호 지점에 앞서 센트럴 소호 지점을 열면서부터였습니다. 마나는 ‘카페’ 뿐 아니라 ‘패스트푸드’ 카테고리에서도 기회를 봤습니다. 패스트푸드와 채식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패스트푸드는 가공식품이며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고 간편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장점만 가져올 수 없을까요? 반면 채식은 각 잡고 앉아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 채식 레스토랑은 일반적으로 가격대가 조금은 높은 편입니다. 물론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념과 라이프 스타일을 지키기 위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지만, 시간과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며 좀 더 캐주얼하게 채식을 즐길 수는 없을까요?

 

ⓒ마나

 

그래서는 마나는 ‘패스트 슬로우푸드’를 마나표 채식의 지향점으로 삼습니다. 인위적인 개입 없이 자연의 시간에 맞게 원재료를 생산하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미리 가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슬로우푸드이고, 매장에서 고객이 빠르게 받아볼 수 있고 먹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패스트푸드입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마나는 3가지 음식 카테고리에 집중했습니다. 오븐에 구운 플랫 브레드에 토핑을 올린 후 돌돌 말아 만든 랩 샌드위치인 오픈 플랫, 그리고 버거와 샐러드입니다. 모든 재료가 비건인 것은 물론이고, 과한 조리 과정 없이 재료를 조합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울러 선택 장애를 겪는 고객들을 위해 10가지 조합의 오픈 플랫, 5가지 조합의 버거를 제안해 더 편하고 빠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컵, 컵 홀더, 컵 뚜껑 모두 식물로 만들었습니다. ⓒ마나

 

패스트푸드라는 메뉴의 특성상 테이크아웃이 많은데, 포장 용기도 비건의 철학에 부합합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는 당연히 전면 금지고, 대부분의 용기를 대나무 섬유로 만든 텀블러, 재생 사탕수수로 만든 포장 박스와 포장지, 나무 펄프로 만든 비닐 등 식물로 만듭니다. 심지어 테이크아웃용 컵 투껑이나 식기 같은 플라스틱 소재도 식물로 만드는데, 일반 플라스틱보다 탄소 함유량이 60~80% 가량 적으며 특수 분해 과정을 거치면 100% 생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 베지웨어(Vegeware) 덕에 포장과 배달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마나는 배달 시스템도 일찍이 도입했는데, 심지어 웡척항(Wong Chuk Hang) 지역에 배달 주문만 받는 지점이 있기도 합니다.

 

<<< 센트럴 소호에 있는 1호점입니다.

 

그 결과 성과도 패스트푸드점에 준합니다. 20여 석에 불과한 소호 센트럴 지점에 하루 평균 500명의 손님이 방문합니다. 아무리 넓은 채식 레스토랑도 이 정도 규모의 고객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2012년 3월 오픈 이후 2018년 말까지 100만 개의 오픈 플랫을 누적 판매했다고 합니다. 채식을 패스트푸드화한 덕분입니다.

 

채식에도 테이스트가 있다

획일적인 패스트푸드의 대항마로 나온 슬로우푸드는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지향합니다. 이를테면 살균한 우유로 대량 생산해 표준화된 맛을 구현한 치즈가 패스트푸드라면, 살균하지 않은 원유를 발효해 치즈 본연의 다양한 맛을 살린 치즈가 슬로우푸드입니다. 방목해 건강하게 키운 소에서 위생적으로 우유를 짠다면 굳이 살균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소를 대량으로 사육해 전 세계로 공급하다보니 살균을 해야 하고 이로 인해 맛을 획일화되는 것입니다.

 

‘패스트 슬로우푸드’를 지향하는 마나 역시 마나만의 방식으로 슬로우푸드의 방향성을 구현합니다. 바로 내 입맛대로 메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른 채식 레스토랑에도 오픈 플랫, 버거 메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선택지가 제한적입니다. 구색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고 그 메뉴가 있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채식주의자들이 빼앗긴 선택권을 마나에서 확 넓혀줍니다. 앞서 메뉴 카테고리를 3가지로 압축한 대신 카테고리별 옵션은 무궁무진합니다.

 

 

오픈 플랫의 경우 선택할 수 있는 토핑이 모두 30여 가지입니다. 물론 30여 가지 토핑은 모두 베지테리안 혹은 비건이며, 500여 개의 농가에서 조달합니다. 토마토, 양파, 콜리플라워, 서양 호박 등 인기 좋은 채소는 물론 템페, 할루미 치즈, 팔라펠 등 이국적인 음식과 타히니, 치포틀레, 허머스 등 다양한 소스도 구비해 두었습니다. 빵도 통밀, 글루텐 프렌들리한 빵, ‘저탄고지’라 불리는 키토 프렌들리 빵 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서브웨이의 채식 전용 버전인 것입니다. 서브웨이에서도 베지테리안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옵션이 굉장히 제한적인 것과 상반됩니다. 마나 버거도 3가지 번, 3가지 패티, 3가지 소스 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포테이토칩 혹은 무지개색 참마칩, 스프, 음료 등을 더해 패스트푸드점처럼 세트 메뉴를 만들 수 있습니다. 5가지 디핑 소스도 완비되어 있습니다. 늘 선택을 제한받던 채식주의자에게 적어도 이 3가지 메뉴에 대해서는 선택권을 충분히 줍니다.

 

이렇게 토핑이 다양하면 식재료의 재고 관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오픈 플랫과 샐러드는 선택할 수 있는 토핑이 같고 버거에도 토핑을 추가할 수 있기에 원재료를 여러 용도로 활용합니다.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를 지향하는 매장답습니다. 음식 중심인 센트럴 소호 지점에서는 전체 토핑 중에서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는 아 라 카르테(a la carte) 바를 운영하고, 음료 중심인 포호 지점과 배달에서는 앞서 말한 추천 조합 메뉴 중심으로 운영해 효율성을 높입니다. 반대로 소호 지점에서는 브이-커피 시그니쳐 메뉴 중 일부만을 주문 받습니다.

 

<<< 3호점인 스타 스트리트 지점은 채식과 환경에 관련한 강연과 모임 등 커뮤니티 이벤트의 허브로 역할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마나

 

2019년 8월 오픈 예정인 스타 스트리트(Start Street) 지점에서는 45평으로 규모를 확장하는 만큼 소호점과 포호점에 나눠 들어가 있던 오픈 플랫 바, 버거 바, 샐러드 바, 커피 바를 한 데 모을 예정입니다. 아울러 진과 콤부차를 혼합한 칵테일, 마나가 만든 글루텐 프렌들리한 수제 맥주 등 오가닉 부즈 바도 추가할 계획이라고 하니 선택지가 더욱 넓어졌습니다. 사실 세상에 없던 수준의 맞춤화는 아닙니다. 다만, 채식이라는 범위 내에서는 차별화하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이렇게 선택지가 넓어질수록 비 채식주의자들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채식 식단을 선택하지만, 비 채식주의자들에게까지 그 불편함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마나는 선택지가 다양하고, 맛있으며, 가격이 합리적인 덕에 이따금씩 채식주의자가 되는 ‘플렉서테리안(Flexitarian)’이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패스트푸드를 만드는 슬로우 스토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카페에 피카소가 앉아있는데 그를 알아본 귀부인이 다가와 적절한 대가를 치르겠으니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5분 만에 초상화를 완성한 피카소는 그림을 내밀며 ’50만 프랑’이라 답합니다. 50만 프랑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8천만 원인 큰 돈이기에 당황한 귀부인은 겨우 몇 분 동안 그린 그림에 어떻게 50만 프랑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를 수 있냐고 따집니다. 이에 피카소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신을 이렇게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2012년에 시작한 마나 역시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20여 년이 걸렸습니다. 포호점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마나의 창립자인 밥시 가이아(Bobsy Gaia)가 큐레이션한, 세상을 바꾸는 책 20권입니다. 채식과 환경에 관한 이 도서 리스트를 완성하기까지 무려 2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매장 한 켠 멋진 큐레이션을 선보이기 위해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읽어낸 책들이 아닙니다. 그가 오랜 세월 환경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실제로 영감을 받았던 책들을 모은 것입니다.

 

 

책 큐레이션만으로는 감이 안 온다면, 밥시가 처음 홍콩에 왔을 때로 시간을 돌려보겠습니다. 레바논에서 나고 자란 밥시가 홍콩에 반해 1992년 이민을 오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있습니다. 바로 제 2의 고향이 될 홍콩에 나무를 심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20여 년간 라마섬을 중심으로 3만 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사이에 밥시는 에이블 재단(Able Charity)을 만들어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라마섬에 홍콩 최초의 비건 카페이자 마나 카페의 전신인 북웜 카페(Bookworm Cafe)를 열기도 했으며, 라이프 카페(Life Cafe)라는 채식 레스토랑을 공동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20년 전 심은 3만 여 그루의 묘목이 이제는 라마 섬을 뒤덮는 숲이 되었습니다. 나무가 숲이 될 만큼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인 것입니다. 매장 고객에게는 빨리 서빙하지만 재료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은 길다는 면에서 ‘패스트 슬로우푸드’라고 칭했듯, 마나 매장도 세월을 두고 천천히 만들어졌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패스트 슬로우 스토어’입니다. 채식에 카페, 패스트푸드, 맞춤화를 접목하기까지 가이아의 20여 년이 필요했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밀도 높기를 바라며, 패스터 슬로워 스토어(Faster Slower Store)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선진 도시들을 여행하며 찾은 외식의 미래가 더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