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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야에서 만난 종이의 미래 – 이토야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 소개한 매장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브랜드는 진화합니다. 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매출을 늘려 성장하기 위해서, 혹은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 소개한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브랜드를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 소개했던 브랜드들의 진화한 모습을 공유합니다. 트래블코드 팀이 <퇴사준비생의 도쿄> 책을 출간한 이후 <퇴사준비생의 도쿄> 여행 프로그램을 20여 차례 운영하며 관찰하고 취재한 변화의 기록입니다.


이토야는 도쿄의 가장 비싼 땅에서 여전히 시간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100년이라는 세월을 견딘 문구점 ‘이토야’에게 2년이라는 시간은 가벼워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소비 트렌드를 급속도로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의 2년은 100년 전의 2년과도 10년 전의 2년과도 시간의 속도와 무게가 다릅니다.

 

긴자 거리에서 명품 매장들 사이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지만, 이토야 매장 내로 들어가보면 변함없기 위해 주기적으로 변하는 이토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즌별로 전체 테마를 바꾸거나, 제품 선정을 달리하거나, 디스플레이 방식에 변화를 주어 고객들이 다시 방문할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그 중에서도 변화가 명확히 보이는 층이 7층입니다.

 

7층은 타케오와 콜라보레이션하여 종이를 판매하는 공간입니다. 이토야 매장의 모든 층 중에서 심미성이 압도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이 층의 한 쪽 코너에 가면 주기적으로 전시회와 같은 이벤트가 열리는데, 이토야에서 기획한 이벤트를 보다보면 종이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전구가 발명됐지만 양초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양초는 예술의 영역으로 이동해 낭만적인 물건으로 용도가 달라졌습니다.”

 

<<문구의 모험>>의 저자 제임스 워드의 설명처럼, 종이는 예술의 영역으로 이동해 낭만적인 물건으로 용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여행 프로그램을 20여 차례 운영하며 만난 이벤트들 중에 종이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획전들을 소개합니다.

 

#1. 종이 포장의 예술

 

2017년 9월 21일부터 11월 21일까지 진행한 기획전에서는 선물 포장 브랜드인 ‘How to wrap’과 함께 종이 포장을 예술적으로 하는 방법을 선보였습니다. How to wrap은 선물을 전달할 때의 포장 매너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진 브랜드입니다. 선물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고 선물을 주는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선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선물 포장에 대한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입니다.

 

창업자인 코지 야마모토는 선물 포장 방법 중 하나로 종이접기 예술을 접목시킵니다. 과거의 종이접기 예술가들이 수학적 법칙을 바탕으로 꽃 모양 장식을 만드는 방식을 도입해 종이의 가치와 선물의 가치를 동시에 끌어올립니다. 기하학적 조합으로 만든 종이의 무늬도 심미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전시를 통해 눈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종이접기로 만든 장식은 선물을 하는 사람에게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종이접기의 설명대로 따라하면서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 종이 자체가 예술

 

2018년 1월 19일부터 3월 13일까지는 종이를 만드는 브랜드인 ‘타케오’와 함께 ‘Paper onomatopoeia – the feel of paper(의성어 종이 – 종이의 촉감)’이라는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종이가 갖는 물성을 부각시켜, 종이를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 보기 보다 종이 자체를 감상의 대상으로 느껴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는 전시입니다.

 

이 기획전에선 종이의 물성을 일본어 의성어 표현에 빗대어 5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거친 질감을 주는 ‘자라 자라(Zara-zara)’, 촉촉함이 있는 ‘시토리(Shittori)’, 반짝반짝 빛나는 ‘키라 키라(kira-kira)’, 바삭거리는 ‘파리 파리(Pari-pari)’, 폭신 폭신한 ‘푸와 푸와(fuwa-fuwa)’ 등으로 종이의 느낌을 표현한 것입니다. 종이 전문가가 아니라면 차이를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데,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의성어를 통해 보통의 사람들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기획했습니다.

 

또한 보여주는 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참여하는 전시로 발전시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5가지 종류의 종이를 만져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의성어 종이를 집어 들고 한쪽 벽에 걸려 있는 투표함에 넣으면 됩니다. 별 거 아닌 듯 보이지만 투표함이 고객들의 행동을 유도합니다. 투표를 하기 위해 고객들은 눈으로만 종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5가지의 종이를 직접 손으로 느껴보고 마음에 드는 종이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투표함 덕분에 전시회의 의도가 살아납니다.

 

#3. 종이로 만든 예술

 

2018년 11월 7일부터 12월 26일까지는 다양한 브랜드들과 함께 ‘Fine paper market’을 운영합니다. 판매하는 제품들을 보면 종이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제품은 ‘Triad’의 ‘오모시로이 블록’입니다. 재미있는 블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메모지 블록의 특징은 메모지를 하나씩 떼어 쓰다보면 건축물이나 도시 풍경 등과 같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메모지를 빨리 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종이 작품입니다.

 

또한 예술성에 실용성을 겸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Vivace design’에서 출시한 ‘Paper jewerly’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금속 알레르기가 있는 여성들이 장신구를 할 때 느끼는 불편함에 공감해 장신구를 100% 종이로 만들었습니다. 종이로 만들었기 때문에 착용했는지도 까먹을 만큼 가볍고, 특수 재질로 제작해 방수는 물론이고 내구성도 높습니다. 금속이 줄 수 없는 부드러운 아름다움과 종이만이 낼 수 있는 스타일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그 뿐 아니라 위트가 넘치는 종이 작품들도 있습니다. ‘Star filled envelope’은 밤을 밝히는 도시의 빛 때문에 숨어버린 별을 종이 봉투 하나로 불러냅니다. 별처럼 구멍이 뚫린 종이 봉투를 입체적으로 열어 한쪽 눈을 감은채 나머지 눈으로 들여다 보면 밤하늘 가득히 펼쳐진 별이 보입니다. 그 옆에는 ‘Pata pata letter’라는 편지 봉투와 편지지가 있는데 봉투에서 편지지를 꺼내면 봉투 안에 그려진 나비가 날개를 펄럭거립니다. 극에 따라서 밀고 당기는 자석의 원리를 활용한 작품입니다. 두 제품 모두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작품들입니다.

 

시간을 이길 종이의 미래

 

“종이책은 그동안 해왔던 미디어의 역할을 디지털에게 넘겨주고, 물질로서의 소재성이 부각될 것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과 체계를 구축한 하라 켄야의 종이책에 대한 통찰입니다. 그는 정보를 유통하는 속도와 밀도, 그리고 정도 등에서는 디지털 미디어와 경쟁할 수 없으니 앞으로의 종이책은 종이라는 소재의 성질과 특성을 어떻게 음미할 수 있도록 만드는지에 따라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2000년에 ‘종이와 디자인’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며 풀어낸 생각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면서도 앞으로도 참고할 만한 혜안입니다.

 

이토야에서 만난 종이의 미래도 하라 켄야의 통찰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정보 전달의 수단을 넘어선 종이의 모습을 다양한 기획전을 통해 보여주며, 종이의 역할과 가능성을 확장했습니다. 이토야가 제안하는 사례처럼 종이의 소재성을 활용해 예술로 승화시킨다면, 이토야가 그러했듯이 종이도 시간을 이길 수 있습니다.

 

도쿄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더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