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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을 찢고 나온 바 – 아이언 페어리즈

어릴 적 끄적인 동화가 현실이 된다면? 이 동화 같은 일이 진짜 일어났습니다. 한 아이가 광산에서 일하며 쓴 그림 동화 <철의 요정>이 어느 날 갑자기 출간되고, 이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바 ‘아이언 페어리즈’가 만들어졌으며, 이 바가 홍콩, 방콕, 도쿄 등으로 퍼져 나갑니다. 아이는 원래 디자인 경험이 전무했지만, 현재는 그의 손을 거친 바가 20여 개에 달합니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에 아예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비즈니스는 어떤 힘을 가지는 걸까요?


“1950년대 불세출의 벌레스크 댄서 미세스 파운드가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는 아지트”

 

이 한 줄의 이야기를 압축 해제하면 홍콩의 스피크이지 바이자 레스토랑 ‘미세스 파운드(Mrs. Pound)’가 됩니다. 일단 밀회 장소답게 열쇠 가게로 위장합니다. 서로의 이름이 새겨진 자물쇠를 잠근 후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열쇠를 다리 너머로 던져 버렸다는 또다른 비하인드 스토리와도 이어집니다. 전면에 진열된 여러 자물쇠 중 조명이 밝혀진 자물쇠를 잡아 당기면 오른쪽 문이 열립니다. 소박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과연 1950년대를 주름잡던 벌레스크* 댄서의 아지트 답습니다. 네온, 에메랄드 그린, 모자이크 타일이 레트로한 분위기를 만드는 가운데 핫핑크와 골드 포인트를 과감하게 섞어 화려하고 관능적인 미세스 파운드의 이미지를 연상케 합니다. 천장에는 무대 뒤 파우더룸에 있을 법한 전구 달린 거울과 무대용 링이 매달려 있고, 벽면에는 가면, 머리 장식, 발레 슈즈, 젓가락과 손거울로 연출한 공작, 포스터, 속옷을 걸쳐 둔 시계 등 소품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거울에 립스틱으로 끄적인 장난스러운 글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나비 장식이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그녀의 성격을 짐작케 합니다.

*벌레스크 : 풍자와 해학이 있는 공연으로 성적인 농담과 여성의 매력을 강조한 춤이 특징. 물랑루즈나 라스베가스의 쇼가 대표적입니다.

 

ⓒEAT hard PLAY hard (Open rice) ⓒDeZeen

 

미세스 파운드의 스토리는 공간 뿐 아니라 메뉴에도 반영됩니다. 미세스 파운드는 잦은 해외 공연으로 아시아 전역의 산해진미를 맛본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메뉴도 미세스 파운드가 즐겨 찾는 다국적 요리를 컨셉으로 합니다. 한국의 불고기, 일본의 야키토리, 중국의 마라, 인도의 커리, 인도네시아의 렌당 등을 그녀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했습니다. 시그니쳐 칵테일에서도 전 세계의 풍미가 느껴집니다. 중국 요리에 자주 쓰이는 말린 귤 껍질 첸피, 동남아 요리에 널리 쓰이는 열대 식물 판단, 들깨, 생강 등 칵테일에 잘 쓰지 않은 이국적인 재료를 더합니다. 메뉴 이름도 니 하오 유 두잉(Ni Hao You Doing), 오픈 세사미(Open Sesame), 행운과 번영(Fortune & Prosperity) 등 위트가 넘칩니다. 미스터 리의 자양강장제(Mr. Lee’s Invigorating Elixer) 등 연인의 이름을 따오기도 합니다.

 

 

홍콩에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과 스피크이지 바는 넘쳐납니다. 이 가운데 미세스 파운드는 개연성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차별화를 이뤄냈습니다. 특정 캐릭터와 상황이 이야기 안에 설정되었기에 그에 어울릴 법한 소품, 인테리어, 분위기, 메뉴 등을 디테일하면서 일관되게 풀어낸 것입니다. 홍콩에는 이처럼 대표 페르소나를 산정하고 그 인물에 맞는 공간을 만든 매장들이 여럿 있습니다. 평생 식물만 연구하던 페른 박사가 식물과 진과의 의외의 궁합을 발견하고는 사람들에게 진 칵테일을 약처럼 처방해주는 컨셉의 닥터 페른스 진 팔러(Dr. Fern’s Gin Parlour) 등 특정 인물과 스토리를 내세우면 사람들에게 보다 컨셉 있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들은 매장을 만들기 위해 짧은 이야기를 지은 것으로 공간이 우선합니다. 여기 3권짜리 동화책으로 바를 만든, 진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공간이 있습니다. ‘아이언 페어리즈(The Iron Fairies)’입니다.

 

동화 속 요정, 세상 밖으로 나오다

14살 남자 아이가 학교를 중퇴하고 호주의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앞날이 깜깜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하 세계는 학교보다 소년에게 더 많은 걸 알려주었습니다. 땅 아래 대자연은 압도적이었고 익숙해졌다 싶을 때쯤 예상을 뒤엎곤 했습니다.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비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경험하고 싶은지와는 별개로, 흔치 않은 경험임에는 분명합니다. 고되고 열악한 업무에 정신 놓고 지낼만도 하지만, 아이는 어둑한 갱을 캔버스 삼아 상상력을 펼쳐갔습니다. <철의 요정(The Iron Fairies)>이라는 동화를 쓰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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