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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서 아쉬운 홍콩의 인사이트 있는 매장 3곳

임대료 높고 경쟁 심한 홍콩에서는 쟁쟁한 매장들도 하루아침에 사라지곤 합니다. 괜찮은 곳을 리서치했는데 취재 가기 전에 없어진 경우는 양반입니다. 이미 취재를 다녀왔는데 미처 글로 옮기기 전에 문을 닫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충분히 경쟁력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간이 사라졌다고 해서 매장들이 가진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인사이트까지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사라져서 아쉬운 홍콩의 인사이트 있는 매장 3곳을 소개합니다.


1. 고속 컨베이어 벨트로 만드는 핫팟 – 핫팟 PNP

2019년 한국을 휩쓸고 있는 마라탕은 홍콩의 국민음식입니다. 홍콩에서는 ‘핫팟’이라고 부르는데 샤브샤브처럼 야채, 육류, 해산물 등 여러 재료를 국물에 데쳐 먹는 요리입니다. 보통 육수나 재료 등으로 차별화하는데 먹어보기도 전에 눈에 띄는 매장이 있습니다. 재료를 원하는 대로 조합해 만드는 1인용 핫팟 전문점 ‘핫팟 PNP(Hot Pot PNP)’입니다.

 

<<< 매장 입구와 출구를 육상 트랙의 시작점과 결승점처럼 분리했습니다.

<<< 마치 운동선수 역량 진단하듯 오각형 평가 모형으로 육수의 맛을 분류했습니다.

 

 

PNP(Pull No Punches)는 복싱 용어로 할 수 있는 한 가장 세게 치라는 뜻입니다. 핫팟 PNP에서는 가장 맵게, 가장 많이, 가장 빠르게 먹으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의미입니다. 핫팟 먹는 행위를 일종의 스포츠로 해석해 매장 인테리어 전반에 스포츠 모티브를 반영했습니다. 입구에는 출발선에 서라는 구령인 ‘on the mark’가, 출구에는 ‘finish’가 적혀 있어 다 먹고 나가면 육상 경기를 완주한 듯한 성취감을 줍니다. ‘Play without fear’, ‘I still have my dream. Never give up until it’s achieved’, ‘Your potential is unlimited’ 등 곳곳의 응원 메시지가 성공적인 ‘완팟’을 기원합니다. 벽면에는 메시, 조던, 이치로, 샤라포바 등 전설적인 스포츠 선수들의 결정적 순간을 일러스트로 그렸습니다. 새빨간 핫팟 육수, 피 튀기는 혈전, 열정 등을 상징하는 레드 포인트가 인테리어 전반에 깔려 흥분감을 고조시킵니다.

 

<<< 주방에서 출발한 접시가 2~3초 사이에 컨베이어 벨트 끝까지 갑니다.

 

<<< 총 8개의 컨베이어 벨트를 두었으며, 각 벨트당 5~10석의 좌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심장 박동수를 높이는 건 컨베이어 벨트 위로 재료 담긴 접시가 빠르게 오가는 장면입니다. 회전 초밥의 이동 속도를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주방에서 출발한 접시는 컨베이어 벨트 끝에 있는 좌석까지 2~3초 내에 도달합니다. 게다가 2개 층으로 되어 있어 더 많은 접시를 초특급 배송합니다. 이렇게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비결은 한 개 층에, 한 방향으로, 한 개의 접시만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부딪칠 위험이 없으니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컨베이어 벨트당 5~10석 정도로 짧게 설계해 접시의 이동 구간이 너무 길지 않도록 했습니다. 대신 컨베이어 벨트를 여러 대 두었습니다.

 

<<< 자리마다 비치된 패드를 중심으로 주문, 서빙, 결제가 연동되어 매장과 고객 모두 편리합니다. 육수는 처음에만 비용을 지불하고 무한 리필되어 재료 추가 판매 가능성을 높입니다.

 

이 컨베이어 벨트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주문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핫팟 PNP에서는 두툼한 메뉴판 대신 각 자리마다 주문용 패드가 있습니다. 패드에서 각자 넣고 싶은 재료를 선택해 주문 버튼을 누르면 주문 정보가 주방으로 전달되고, 재료가 준비되는 족족 컨베이어 벨트로 배달됩니다. 먹는 도중 편하게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무려 100가지 재료의 조합이라 사람이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한다면 오래 걸리고 매장 동선이 복잡해지며 실수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패드로 대체한 덕분에 약 70여 석을 5명 정도의 홀 직원으로도 충분히 커버합니다.

 

 

그럼 홀 직원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이 시스템이 삐걱대지 않고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를 쳐 줍니다. 고객이 처음 자리에 앉으면 홀 직원이 주문용 패드 사용법을 간단히 설명한 후 일단 육수부터 고르게 안내합니다. 육수가 끓는 동안 비교적 가짓수가 많은 재료를 고르도록 해 체류 시간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1인용 핫팟이라 더욱 빨리 끓는 건 덤입니다. 또한 접시 회수 버튼을 안 눌러 컨베이어 벨트에 병목을 일으키고 있는 좌석에 회수를 안내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마저도 자동화하기 위해 회수할 때까지 알람이 울리도록 합니다. 이렇게 컨셉, 시설, 시스템이 공조한 덕에 다 먹고 나갈 때까지 평균 30여 분이 걸립니다. 혼식 메뉴와 옵션이 많은 복잡한 메뉴 구성을 고민 중이라면 핫팟 PNP의 운영 효율성을 참조할 만 합니다.

 

2. 눈 앞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주는 디저트 – 아툼 데저런트

달콤한 상상을 하나 해봅시다. 파티셰가 눈 앞에서 디저트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것도 즉흥적으로. 홍콩의 디저트 바 아툼 데저런트(Atum Desserant)에서는 상상이 현실이 됩니다. 바 테이블마다 파티셰가 즉흥 디저트쇼를 보여줍니다. 메뉴 이름도 재즈 즉흥 연주를 뜻하는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sation)’입니다. 스테이크같은 브라우니, 석탄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단품 메뉴도 위트 만점이지만, 아툼 데저런트의 최고 인기 메뉴는 단연 임프로바이제이션입니다.

 

 

먼저 바 테이블에 앉아 흰색, 회색, 검은색 중 하나를 골라 실리콘 매트를 깝니다. 이 매트를 캔버스 삼아 바 건너편의 파티셰가 손님 눈 앞에서 디저트를 한땀한땀 ‘그려’ 나갑니다. 색색깔의 소스로 난 치듯 시원시원하게 획을 긋고 점을 찍으며 밑그림을 다집니다. 화포 위에 물감을 즉흥적으로 흩뿌리며 우연한 작품을 만들어내던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무스 타입, 슬레이트 타입, 털실 타입, 큐브 타입 등 다양한 제형과 색의 초콜릿, 푸딩, 생크림, 마시멜로, 모찌, 과일 등을 차곡차곡 쌓아올립니다. 여기에 드라이 아이스 연기를 내뿜는 액화 질소 아이스크림을 즉석 제조해 얹으면 현장감이 배가 됩니다. 보통 디저트는 식사를 마무리하는 조연인데 여기서는 어엿한 주인공입니다. 레스토랑이나 위스키 바의 전유물이던 16층 전망을 누릴 수 있게 한 것도, 밤 11시 30분까지 심야 영업하는 것도 모두 간만에 주인공 자리를 꿰찬 디저트를 최대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원하는 문구도 새길 수 있어 기념할 일이 있을 때 적격입니다. 한국어로 ‘퇴사준비생의 홍콩’을 부탁해도 거뜬합니다.

 

임프로바이제이션 메뉴는 328 홍콩달러(약 49,200원)로 일반 단품 메뉴 가격의 2배가 넘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제대로 된 한 끼 식사 값에 버금갑니다. 사실 디저트에 선뜻 쓰기에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그렇다고 파티셰의 실력이나 재료의 퀄리티가 월등하게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다리면서까지 임프로바이제이션 메뉴를 찾는 건 과정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잭슨 폴록이 결과물이 아니라 제작 과정 그 자체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듯, 아툼 데저런트도 디저트 만드는 과정을 메뉴화하였습니다. 단순히 오픈 키친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흥미로운 제조 과정을 별도로 만들어 선보임으로써 한 편의 쇼를 본 듯 합니다. 아툼 데저런트의 바 테이블을 ‘테이블 극장(Table Theatre)’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꼭 요식업이 아니더라도 만드는 과정을 노출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좋을 듯 합니다.

 

3. 20분마다 가격이 2배가 되는 해피 아워 – 마즈 타이 & 바비큐

보통 ‘브런치’라고 하면 정오에 가까운 늦은 아침, 에그 베네딕트 등 간단한 서양식 아침 메뉴에 커피를 곁들인 우아한 식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홍콩에서 브런치는 조금 다른 이미지입니다. 오후 늦게까지 이어지며 술을 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술 브런치로 시작해 초저녁 거나한 술자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브런치 레스토랑 뿐 아니라 일반 음식점과 술집에서도 주말 브런치 행렬에 동참합니다. 주로 술이 미끼 상품입니다. 음식 주문 시 무제한 샴페인, 균일가, 1+1 등 할인 마트에서 할 법한 파격적인 브런치 딜을 내세웁니다. 그 중 타이 음식점 ‘마즈 타이 & 비비큐(MAZ Thai&BBQ)’가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방식이 기발합니다.

 

<<< 다양한 브런치 딜을 선보이던 마즈 타이 & 비비큐는 더 이상 매장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toofullforfood

 

마즈 타이 & 비비큐는 주말 오후 4시에 술 1잔을 1 홍콩달러에 판매합니다. 그리고 20분마다 가격을 두 배로 올립니다. 제한 시간은 6시까지입니다. 4시에 온 손님이 20분마다 한 잔씩 따박따박 시키면 최대 약 2만 원에 7잔을 마실 수 있습니다. 1잔당 2,700원 정도입니다. 똑같이 일찍 왔다고 하더라도 술 마시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면 1잔당 가격은 더 올라갑니다. 늦게 오면 몇 잔 마시기 전에 제한 시간이 끝나 버리거니와 시작 가격이 비교적 높습니다. 그래서 일찍 올수록 유리합니다. 물론 이 스킴이 적용되는 마지막 잔 역시 64 홍콩달러(약 만 원)로 저렴하기에 6시 전에만 오면 혜택을 받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마즈 타이 & 비비큐의 해피 아워가 더욱 파격적으로 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혜택도 잘게 쪼개어 층위를 나누면 손님은 더 큰 혜택으로 느낍니다. 자신의 노력 여부에 따라 더 큰 혜택을 얻어갈 여지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더 빨리 와서 더 많이 먹으면 됩니다. 또한 첫 잔 가격이 한화로 150원에 불과한 1 홍콩달러로 20분 한정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2시간 동안 균일가 2,700원’보다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사실상 같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술을 미끼로 미리 온 고객들은 안주라도 하나 더 시킵니다. 제대로 된 저녁 식사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한정판을 더욱 한정적으로 만드는 방법, 혜택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마즈 타이 & 비비큐의 사례를 참조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여행을 여행답게 만듭니다.”

여행의 묘미를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계획한 일정을 숙제하듯 소화할 때가 아니라, 뜻밖의 상황을 느닷없이 마주칠 때입니다. 예정에 없었던 대화, 있는 지도 몰랐던 공간,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 경험하기 어려웠던 현상, 기대하지 않았던 디테일 등이 여행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세우는 건 중요하지만, 우연이 끼어들 여지를 남겨둘 필요도 있습니다. <생각이 기다리는 여행>은 여행에서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선물해 준 생각지도 못한 생각들에 대한 기록이자, 계획할 수 없었기에 더 소중한 여행의 조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