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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마시는 칵테일의 맛 – 비하인드 바

홍콩의 100년 된 감옥에 칵테일 바가 들어섰습니다. 감옥에서 한 잔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지만, 진짜 술맛 돌게 하는 비결은 따로 있습니다. 감옥이라는 맥락을 아예 없애버리지도, 감옥이라고 해서 너무 어둡게 접근하지도 않습니다. 공간 재생의 기술을 엿보고 싶다면 이름부터 남다른 ‘비하인드 바(Behind Bars. 수감 중이라는 뜻)’를 눈여겨 보세요.


홍콩 구도심을 걷다보면 전당포가 블록마다 하나씩 있습니다. ‘압(押)’이라고 쓰여져 있는 간판이 모두 전당포입니다. 세계적인 금융 허브 도시에서, 그것도 21세기에 왠 전당포일까 싶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은행 이용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야 신분증만 있으면 계좌 개설이 가능하지만 홍콩에서는 매월 일정한 소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계좌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개설하고 나서도 일정 금액 이상 예금 잔고를 유지해야 하고, 유지하지 못하면 매달 은행에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계좌 개설조차 까다로우니 대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서민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은행보다 전당포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당포라고 해서 후미진 곳에 있거나 영세하지 않습니다. 번화가 노른자위 땅에 자리하고, 프랜차이즈 전당포도 있으며, 유명 전당포 중 하나는 주택 자금 대출 사업도 할 만큼 홍콩에서의 입지가 단단합니다.

 

<<< 우청 전당포 건물은 도보 5분 거리에 트램, 지하철, 버스 정류장과 완차이 시장이 있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합니다. 왼쪽 윗편에 우청 전당포(和昌大押)라는 간판이 130년간 유지되고 있습니다. ⓒasianfiercetiger

 

번화가 중의 번화가 완차이 지역도 전세권(전당포 세권)입니다. 그 중에서도 130년 된 우청 전당포의 존재감이 상당합니다. 우청 전당포는 야외 발코니와 석조 기둥, 높은 천장 등 고풍스럽고 웅장하기까지 한 19세기 영국 식민 시대의 건축 양식으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도로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 4층에 달하는 꽤 규모있는 건물임에도 유려한 인상을 줍니다. 아쉽게도 이 역사적인 랜드마크에서 더 이상 전당포 영업은 하지 않습니다. 전당포가 홍콩에서 여전히 성업 중이라고 해도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곳은 문화유산 보존지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보존지라고 해서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더 폰(The Pawn)’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와 있습니다. 용도는 바뀌었지만 외양은 물론 내부 구조와 장식도 그대로입니다. 발코니에 앉아 트램이 지나가는 걸 내다보노라면 130여 년 동안 이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봤을 사람들이 상상됩니다. 우청 전당포 건물 외에도 세월의 더께가 두터운 전당포 건물들이 레스토랑, 바, 카페 등 새로운 쓸모를 더하며 속속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전당포가 홍콩인들에게 친숙한 건 어쩌면 이렇게라도 곁에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한때 홍콩도 효율이나 경제 논리에 따라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을 허물어버리고 그 자리에 초고층 빌딩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옛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는,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에 주권 반환 이후 홍콩인들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들을 설명해줄 만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소중히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홍콩 정부가 2008년 ‘역사적 건물 재활성화’ 프로젝트를 출범하면서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도시 곳곳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타이쿤(Tai Kwun)도 그렇게 다시 태어난 공간 중 하나입니다. 1841년 홍콩을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그 해부터 도심 한복판에 경찰서, 법원, 감옥을 차례로 지었습니다. 화강암과 벽돌에 기초한 빅토리아 건축 양식으로 오랜 기품이 있습니다. 16개 건물이 사적으로 공식 지정되었음에도 박물관으로 박제하지 않고 현대적인 상업 시설들을 과감하게 도입했습니다. 그 중 칵테일 바 ‘비하인드 바(Behind bars)’가 돋보입니다. ‘수감 중’이라는 의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감옥을 컨셉으로 한 바입니다. 하지만 컨셉만 게으르게 차용한 것이 아니라 감옥의 구조와 맥락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한 노력들이 엿보입니다. 옛 감옥으로 단순히 인테리어의 재미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옛 감옥이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것들을 구현했습니다.

 

독방을 프라이빗룸으로

<<< 빅토리아 형무소 E홀의 복원 전 삼엄한 모습입니다. ⓒDavid Hodson ⓒHong Kong Memory

 

빅토리아 형무소는 홍콩 최초이자 가장 오래 운영한 감옥입니다. 재밌게도 홍콩 최초의 서구식 건물이 바로 이 감옥이었다고 합니다. 영국 식민 시대, 제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그 중 비하인드 바가 있는 E홀은 1인용 독방이 모여있던 3층짜리 건물입니다. 좁고 긴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1평 남짓한 10여 개의 독방이 줄지어 있습니다. 복도에는 3층까지 뻗어있는 노출형 계단이 있어 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순찰했을 교도관의 삼엄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비하인드바는 이러한 공간 구조와 맥락을 살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낮 시간에는 각 독방에 쇠창살을 쳐두다가 저녁이 되면 쇠창살을 열어 젖힙니다. 자유의 시간이 온 것입니다. 이 해방감은 독방 안에 들어가도 유지됩니다. 양 옆을 터 둬서 옆방과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리 답답하지 않습니다. 어느 방에 있든 가장 끝 편에 있는 독방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 독방의 옆 벽을 트되 외곽 프레임을 남겨두어 답답하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도 지킵니다.

 

그러면서도 프라이버시는 지켜집니다. 옆 벽을 완전히 터 둔 것이 아니라 외곽 프레임을 남겨두어 자연스럽게 방이 분리되기 때문입니다. 구조가 이러하니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방 단위로 이동합니다. 굳이 다른 독방들을 거쳐 지나지 않고 쇠창살을 젖힌 각각의 입구를 통해 출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각 방마다 앉는 방향이 모두 동일합니다. 복도를 바라보고 앉는 것이 기본이고 일행이 더 많을 때는 복도를 등지고 앉습니다. 시선의 방향이 같기에 다른 방으로부터 불필요하게 시선을 받는 일이 줄어듭니다. 감옥이었을 때는 독방이 사무치게 저주스러웠겠지만, 비하인드 바에서의 독방은 오붓함의 원천입니다. 구조가 행동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 주문한 음료를 가져가는 공간을 독방 하나에 따로 마련해 고객이 앉는 라인의 반대편에 두었습니다.

 

주문 방식도 감옥의 독방 구조와 잘 어우러집니다. 만약 서버가 자리에서 주문을 받거나 술을 자리로 가져다주면 서버가 독방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공간이 협소하거니와 독방의 프라이빗함을 잠시나마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비하인드 바는 손님이 계산대에 와서 주문하고 직접 가져가는 시스템으로 운영합니다. 그리고 계산대와 주문한 음료를 받아가는 공간을 좌석이 있는 라인이 아닌 반대편 라인에 두었습니다. 아무래도 계산대와 주문한 음료를 받아가는 공간에는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데 손님들이 이용하는 독방 라인과 주문 라인을 아예 분리해 동선을 깔끔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수감자들이 식판을 들고 직접 식사를 배급받던 것을 떠올리면 꽤 일관됩니다. 이런 셀프 시스템에 감옥 컨셉이 더해져 진짜 감옥에 있을법한 단촐한 의자와 테이블에 불만이 생기지 않습니다.

 

무력하던 곳에서 생기 넘치는 곳으로

그렇다고 다들 독방에 숨어들어 조용히 즐기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흥겹고 힙한 라운지 클럽에 가깝습니다. 감옥이었다고 해서 무섭고 음습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다든지 과거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비하인드 바는 이 곳을 ‘사람들을 위한 공간(places for people)’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원래도 감옥이 (수감자라는) 사람을 수용하는 공간이기에, 그 맥락을 이어 수감자가 아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핏기 없고 무력하던 공간에 새롭게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비하인드 바는 여러 장치를 마련합니다.

 

먼저 복도를 따라 긴 테이블을 두었습니다. 단체 손님에게 좋고 여러 일행들이 섞여 합석하기에도 적합합니다. 복도가 좁아서 긴 테이블이 가로막고 있으면 자칫 답답해보일 수도 있는데, 투명한 아크릴 소재를 써서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조명을 밝히면 아크릴 소재가 은은하게 빛을 퍼뜨리며 간접 조명의 역할까지 합니다. 홀 안을 가득 메운 클럽 음악에 대화 소리가 절로 높아집니다. 한 데 어울리기 좋은 환경이 기본으로 세팅되었습니다.

 

소재나 색상 등 충돌되는 요소를 과감하게 섞는 것도 공간에 생기를 더합니다. 비하인드 바는 감옥을 리뉴얼하며 콘크리트와 흰색 페인트로 정돈했습니다. 바탕을 균일하게 만든 덕에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얹어도 무리없이 녹아듭니다. 독방 옆면의 외곽 프레임에는 색색깔의 네온 조명을 밝혔습니다. 외곽 프레임의 크기는 동일하지만 방과 방 사이의 거리 덕에 가장 끝방에서 반대쪽 끝방을 보면 네온 색깔을 밝힌 프레임이 켜켜이 한 눈에 들어와 굉장히 화려합니다. 끝방의 소실점을 향해 무제한 확장되는 듯한 느낌도 줍니다. 여기에 방과 방 사이, 복도 천장, 거울같은 메탈 소재를 더해 공간이 넓어 보이면서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 감옥을 위트있는 일러스트로 담아 칵테일 라벨지로 활용합니다. ⓒ비하인드 바

 

비하인드 바의 시그니쳐 메뉴인 칵테일 병 라벨 디자인도 생기 발랄합니다. 귀엽고 섹슈얼한 일러스트로 유명한 클라우디아 찬호이(Claudia Chanhoi)와 콜라보해 빅토리아 형무소를 총천연색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감옥 쇠창살을 욕실 문으로 바꾸고 샤워하는 뒷태를 그린다든지, 대나무 창살로 바꿔 홍콩다움을 가미하는 등 위트 있는 일러스트를 보여줍니다. 신체 부위나 LGBT 관련한 내용이 들어갈 정도니, 역사 유적이나 감옥이라 할 지라도 성역은 아닌가 봅니다.

 

격리되던 곳에서 함께 할 이유가 있는 곳으로

물론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서로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하지만 아예 함께할 꺼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즉효입니다. 비하인드 바는 감옥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넘어 ‘바’라는 용도도 한껏 확장합니다. 비하인드 바가 아니라 비욘드 바(Beyond Bars)라고 불러야 할 듯 합니다.

 

<<< 문화 콘텐츠 기획사 보일러 룸(Boiler Room)과 함께 한 댄스 파티 현장입니다. ⓒ비하인드 바

 

SNS에서 비하인드 바를 검색해보면 각종 이벤트를 하고 있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품 런칭 행사, 자선 바자회, 워크샵, 조찬 모임, 디제이 파티 등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만한 용도입니다. 감옥에서 술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인데 감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용도들이 더해지니 평범한 이벤트도 잊지 못할 경험으로 만들어 줍니다. 특히 비하인드 바가 위치한 E홀은 바로 앞에 원래 수감자들의 마당으로 쓰던 광장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 탁 트인 야외까지 확대해 공간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택지 구획이 좁은 홍콩에서는 귀한 경험입니다. 테이크아웃하기 편하게 만든 레디 메이드 칵테일 병이 한 몫 합니다.

 

단순히 외부 행사를 유치하는 데서 더 나아가 비하인드 바는 그들 스스로도 여러 행사를 정기적으로 주최합니다. ‘사우스 캔톤 소울 트레인(South Canton Soul Train)’이라는 디제이 파티를 금요일마다 열며,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는 클럽 비하인드(Club Behind)라는 칵테일 파티를 엽니다. 또한 오후 시간대에는 레드백 커피(Redback Coffee)와 함께 카페로 운영해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입니다. 이로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곳에 올 이유를 줍니다. 쓸모가 한정적이었던 감옥이라는 공간에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살리기 위해 죽일 것들

2011년 경성역 역사가 ‘문화역 서울 284’로 새단장해 문을 열었습니다. 돔 지붕, 붉은 벽돌, 스테인드 글라스 등 일제 시대 건축을 성실히 복원해 화제였습니다.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도 기존의 맥락을 이어갑니다. 예전에는 서울역이 철도로 사람과 지역을 이어줬다면 지금은 문화 콘텐츠로 사람들을 모으고 소통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역을 서울과 연관된 전시와 공연을 선보이는 문화공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렇듯 서울역이 계속 다시 와야 할 이유를 주는 공간이 되어 다행이기는 하나, 전시 위주의 다소 단조로운 공간 구성으로 아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공간에 어울리는 레스토랑, 바, 편집샵 등 매장이 있었다면 전시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유적지에 상업 시설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간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홍콩에는 사적에 상업 시설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사적을 함부로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보존하기보다 조심스럽고 면밀하게 적합한 새 쓸모를 모색합니다. 옛 건물들은 지금과는 달리 널찍하게 지어서 새로운 용도를 더하기 좋고 견뎌온 세월의 결이 제각각이라 그 자체로 고유합니다. 앞서 소개한 우청 전당포 건물만 하더라도 130년 간 전당포, 공동주택, 레스토랑으로 용도를 바꾸며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온 ‘이야기가 있는 공간’입니다. 궁, 한옥, 역 등 굳이 역사적이고 특징적인 건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홍콩은 전당포, 관공서, 탁구장, 얼음 창고, 화약 창고 등 이제는 쓸모를 잃어버린 옛 공간들도 보존지로 공식 지정하고 현재를 덧칠하고 있습니다.

 

역사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려면 어쨌든 사람들이 계속 찾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갱생하던 감옥처럼, 공간을 다시 살려낸 비하인드 바에서 공간 재생의 기술을 엿보셨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비하인드 바 공식 홈페이지

위키피디아 Victoria Prison 항목

홍콩 전당포, 60년의 역사와 현재

홍콩의 전당포

비하인드 바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