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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토 오오키와의 우연한 만남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 소개한 마지막 콘텐츠는 초콜릿 가게인 ‘B by B’ 입니다. 벨기에의 미슐랭 스타 쉐프가 만든 초콜릿 가게여서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이 브랜드가 해외에 오픈한 첫 매장을 ‘넨도(Nendo)’이 디자인했기 때문입니다. 30여 종의 초콜릿 바 매대와 카페를 좁은 공간에 구성하기 위해 넨도가 낸 아이디어가 인상적인 공간입니다. B by B는 2018년에 매장을 긴자에서 신주쿠 지역으로 이전했는데 공간 구성이 달라 더이상 넨도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경험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넨도의 문제 해결력을 경험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넨도가 마더 포트(Mother port) 커피와 제휴하여 디자인했다고 하는 ‘코넬 커피(Connel coffee)’를 찾아갔습니다. 코넬 커피 외에도 여러 곳을 취재할 계획이어서 효율적 시간 활용을 위해 오전 9시에 방문했습니다. 보통의 리테일 매장들은 오전 10시 이후에 오픈하는 반면 카페는 오전 일찍부터 영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복층 구조에 통유리로 되어 있는 인테리어가 특징인 카페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대신 넨도의 문제해결력을 찾기 위해 내부를 살폈습니다. 넨도라면 카페를 디자인할 때도 남다른 생각을 할 거라 예상했는데, 역시 넨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창 측 바 테이블 좌석에 넨도의 문제해결력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노트북 등으로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노트북 등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배려하기 위해 콘센트를 쓸 수 있는 좌석을 마련해 둡니다. 코넬 커피에도 여느 카페처럼 창 측 바 테이블에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는 좌석이 있었는데,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방식으로 콘센트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코넬 커피에서 발견한 콘센트는 바 테이블 하단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고려해서 테이블 하단에 콘센트를 설치하는 건 다를 바 없었지만, 넨도는 콘센트를 테이블 아래 쪽의 벽에 설치하지 않고 테이블 하단에 ㄷ 자 모양으로 홈을 낸 후 홈의 바닥면에 콘센트를 올려 두었습니다. 넨도는 어떤 이유에서 콘센트 설치에 변형을 준 것일까요?

 

고객 관점에서 보면 넨도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카페에서 콘센트를 찾는 경우는 노트북을 쓸 때나 핸드폰을 충전할 때입니다. 우선 노트북을 충전할 때의 경우를 상상해보면, 노트북의 코드를 바로 콘센트에 꽂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댑터를 거쳐야 합니다. 최신형 노트북의 충전기는 코드 부분에 어댑터가 연결되어 있어 별도로 어댑터 관리를 할 필요가 없지만, 보통의 충전기들은 선 중간에 어댑터가 있어 코드를 꽂은 후 어댑터를 어딘가에 위치시켜야 합니다. 어댑터를 바닥에 놓으면 어댑터가 지저분해지는 문제가 생기고, 테이블 위에 놓으면 테이블 사용 공간이 좁아지는 이슈가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넨도가 낸 아이디어는 빛을 발합니다. ㄷ 자 형태로 홈이 파여 있고, 그 바닥 면에 콘센트가 있기에 코드를 꽂고 그 옆에 어댑터를 놓을 수 있습니다. 바닥이 아니기에 지저분해질 리도 없고, 테이블 위가 아니기에 사용 공간이 좁아질 리도 없습니다. 바닥과 테이블 사이에 어댑터를 위한 공간을 만든 셈입니다.

 

ㄷ 자 형태의 홈은 노트북뿐만 아니라 핸드폰을 충전할 때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핸드폰을 충전할 때 보통은 코드를 꽂고 핸드폰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핸드폰 충전할 때는 ㄷ 자 형태의 홈은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몰입을 위해 핸드폰을 의도적으로 멀리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ㄷ 자 형태의 홈은 충전하면서 핸드폰을 숨겨두기 적합한 공간입니다. 핸드폰을 테이블 하단에 두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독서를 하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됩니다.

 

콘센트 하나를 설치하더라도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넨도의 디자인에 감탄을 하고 있는데, 카페로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아무도 없던 카페에 들어온 손님을 무심코 봤는데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었습니다. 넨도 디자인의 대표 ‘사토 오오키’였습니다. 너무나도 만나보고 싶던 사토 오오키가 눈 앞에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취재 때에는 사람 만날 일이 없어 후줄근하게 다니는데, 하필 초췌한 상황에서 그토록 만나보고 싶던 사토 오오키를 만났습니다. 평소라면 체면을 생각해서 그냥 지나쳤을텐데 다시 없을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걸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고 팬임을 밝히며 용기 내어 사진 한 장 찍어도 괜찮은지 물어봤습니다. 연예인을 봐도 무덤덤하게 지나치는데 사토 오오키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종종 있는 일인지, 그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명함을 교환한 후 그는 커피를 받아들고 카페를 나섰습니다.

 

그가 떠난 후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후줄근한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토록 만나보고 싶던 사람을 만났는데, 팬이라는 말 외에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바람만 있었을 뿐, 그를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 또는 무엇이 궁금한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준비한다고 기회가 오는 건 아니겠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비범한 사토 오오키와의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되어, 그 날 따라 모닝 커피가 쓰게 느껴졌습니다. 평소에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를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함께 고민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뜻밖의 교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