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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애플파크에서 생긴 일

애플의 신사옥인 애플파크는 하나의 요새이자 벙커였습니다.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파크에 다다랐을 때, 애플파크는 한참을 돌 정도로 거대한 건물이었는데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한참을 돌아도 건물의 외관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요새처럼 견고하면서도, 벙커처럼 숨어있었습니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 곳이라, 방문객으로서 갈 수 있는 곳은 애플파크 비지터 센터에 있는 애플 스토어였습니다. 애플 스토어의 외관은 주요 도시 곳곳에 있는 애플 스토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다른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선 애플파크의 애플 스토어는 보통의 애플 스토어와 공간 구성이 달랐습니다.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중심으로 오른쪽 옆에는 카페가, 왼쪽 옆에는 애플파크를 소개하는 공간이, 그리고 2층에는 애플파크를 바라보면서 쉴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애플 스토어에 있는 카페에서 제품의 혁신을 만날 수 없었지만, 층고가 높은 공간에서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기분의 혁신은 있었습니다.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옥상의 혁신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전망대에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애플파크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반전의 혁신이 있었습니다.

 

카페와 전망대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긴 어려웠지만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과 애플파크를 소개하는 공간에서는 눈에 띄는 다른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에는 애플의 기기들 외에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애플에서 기념품을 판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애플파크까지 온 팬들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기념품을 사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생각하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로고가 담긴 기념품을 팔면 브랜드에 손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완벽한 원형 건물로 불리는 애플파크의 모양을 모티브로 티셔츠, 가방 등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면서 팬심도 지키려는 지혜가 돋보입니다.

 

판매 공간의 왼쪽 편에는 애플파크를 소개하는 공간이 있는데, 이 곳에 가면 애플파크의 모형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모형물들과 달리 애플파크의 형태만 구현해 놓았을 뿐, 컬러를 입히거나 조경을 표현하는 등의 디테일은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해보이는 부분을 제거해 유려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애플다웠지만 디테일까지도 생략한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때 쯤, 마음을 읽었는지 직원이 다가와 아이패드를 건내줍니다.

 

아이패드로 모형물을 들여다보니 화면에 증강현실이 펼쳐집니다. 모형물에 건물의 컬러와 주변의 조경이 덧입혀지는 것은 물론이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와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까지도 증강현실에 등장합니다. 게다가 공기 순환, 에너지 사용 등 애플파크에 대한 설명까지 아이패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며 보는 사람들에게는 유려한 디자인의 모형물을, 관심있게 보는 사람들에게는 건물의 상세한 디테일까지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아이패드를 매개로 했기에 더 설득력이 생기는 애플파크 소개 공간이었습니다.

 

아이패드로 애플파크를 구경하고 이동을 하려는데, 통유리로 된 창을 회전문 돌리듯 90도로 열어 놓았습니다. 벽이 아니라 창문 역할을 하는 유리창이라는 사실이 새로워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보통의 경우에 창문 역할을 하는 통창은 아코디언 주름 접듯이 접이식 형태로 창을 열기 때문에 통창의 가로 폭이 좁습니다. 그래서 통창의 제대로된 느낌을 내기 어렵습니다. 반면 회전문 돌리듯 통창을 여니 접히는 부분을 구분해둘 필요가 없어 통창의 가로 폭이 2배 넓어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통창을 설계한 덕분에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면서도 창문을 열어 건물의 내외부를 더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틀을 깨는 아이디어를 기록하고자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평을 맞춰서 사진 찍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수평이 맞을 때까지 여러 차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직원이 다가왔습니다. 애플 스토어에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건 아니었지만,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직원이 다가오자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줄 알고 사진 찍던 아이폰을 눈치껏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직원이 괜찮다는 손짓으로 말했습니다. 사진 찍어도 되는데 도대체 왜 아무 것도 없는 배경의 통창을 찍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러 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위의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자 직원은 흥미롭다는 듯이 자리로 돌아가 동료와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직원들이 고객들을 호기심 있게 관찰하면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자 서슴없이 와서 이유를 물어보고 동료과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직원 한 명의 사례로 업무 매뉴얼에 고객 관찰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유추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명의 직원의 행동을 통해 애플이 만들어내는 혁신의 DNA를 감지할 수는 있었습니다.

 

요새와 벙커 같은 애플파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애플파크 비지터 센터에서 생긴 일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스티브잡스의 유작으로 불리는 애플파크에서, 그의 철학과 비전에 공감하는 혁신쟁이들이 만들어낼 혁신적인 제품들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