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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지된 가치가 바꾸는 고객 경험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기차로 3시간 반 가량 걸립니다. 어떻게 하면 이 여정을 더 나은 여행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여행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던진 이 질문에 엔지니어들이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60억 파운드(약 9조원)를 들여 런던에서 도버해협까지 구간의 선로를 새로 지어 여행 시간을 40분 단축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답변에 대해 광고인 로리 서덜랜드는 공학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여행 시간을 단축시키는 건 상상력이 부족한 접근이라고 말하며, 나름의 답을 펼쳐 보입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전세계의 탑모델을 고용해 기차 안을 걸어다니면서 공짜로 비싼 샴페인을 여행 내내 따라주면 되지 않을까요?”

 

순진한 답이라는 전제를 깐 후에, 그가 제안한 여행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여행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그는 여행하는 시간을 즐겁게 해도 여행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30억 파운드(약 4.5조원)의 예산으로도 충분하고, 승객들이 오히려 기차가 더 천천히 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는 농담도 덧붙입니다.

 

그가 TED 강연에서 ‘광고쟁이의 인생 교훈’이라는 주제로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야기했던 사례는 실제로 구현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접근은 의미가 있습니다. 인지된 가치만 바꿀 수 있어도 고객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유머 감각있게 공감시켰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에 TED에서 소개되었던 강연이 떠올랐던 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난 홍보물 덕분입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들을 지나쳐가는데 어느 탑승구 근처 창문에 ‘That will be This’ 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That’ 아래에는 프레임을 통해 창밖의 공사장을 보여주고, ‘This’ 아래에는 그 공사가 완료되었을 때의 모습을 설명과 함께 이미지로 표현해 두었습니다. 이 곳에 펼쳐질 풍경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공사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과 미관상의 불편함을 인지적 가치를 더해 완화시키는 것입니다.

 

승객들이 겪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 기술력, 자본력, 인력 등을 동원해 공사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로리 서덜랜드의 상상처럼 승객들이 느끼는 인지된 가치만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어도 가성비 높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쪽 공사장에는 갤러리에 가까운 공항 터미널이 생길 것이라는 설명이 있고, 반대쪽에는 공항 호텔을 재정의할 호텔이 생길 것이라는 설명이 있어 향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 주변에 어떤 시설이 들어설지에 대한 홍보 역할도 톡톡히 합니다.

 

‘놀라운 풍경이 곧 도착할 것입니다. (Amazing will soon be arriving.)’라는 제목이 적힌 홍보물 자체가 이미 놀라운 풍경이었습니다. 로리 서덜랜드가 제안하듯이 문제 해결을 할 때 대단한 기술이나 거창한 시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술력, 자본력, 인력 만큼이나 상상력은 힘이 셉니다.